제 이전 글과는 상반되는 내용입니다만, 근래에 다른 생각이 드는 일이 있어서 나누고 싶어 글을 적어봅니다. 이전처럼 긴 글은 아니고, 이전 글에 대한 짧은 사족 정도로 생각해 주세요.
이전 투약치료기에서, 환자 본인이 자신의 치료에 대해 명확히 인지하고, 치료를 선택하고, 변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알고 진행하는 치료와 모르고 진행하는 치료에는 확연히 차이가 있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전히 약효의 구현에 대해 고민하고, 용량과 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 고민 속에서 최근엔 콘서타 2알에서 메디키넷 2알로 약제를 변경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체계적 분석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선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근래에 있었습니다.
그날, 저는 평소와 같이 약을 투약하고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웬일인지 약효 발현이 조금 다르더라고요. 그날 혼자 있던 게 아니라 소중한 사람과 함께 있었고 같이 어떠한 작업을 하던 중이어서 더욱 당황했습니다. 그 문제가 아무래도 그날 마신 음료에 들어있는 성분이 제 신경계에 어떠한 영향을 주어서 약효가 달리 반응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찾는 과정 속에서 그날 일과가 많이 망가졌습니다.
약물치료를 하고, 약효를 관찰하는 행동을 하는 초목적은, 결국, 삶의 개선입니다. 약물 치료는 결국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수행하는 수많은 일들 중 “하나”에 불과한 것입니다. ADHD 투약치료가 우리에게 중요한 만큼, 가끔은, 그러한 가치 체계가 전복되는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근래에 망친 일과가 그러한 일이 발생한 일례이지요.
투약치료는 결국엔 수단입니다. 중요한 건 삶 그 자체입니다. 삶이라는 긴 여정에서 앞으로 수월하게 나아가기 위한 도움으로써 약이 있는 것이지, 약 때문에 걷기를 멈춰서는 안 되는 일이지요. 그러나 가치전도라는 건 흔한 현상이에요. 사람은 원래 열중하다 보면 가끔 혼동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말이죠.
이건 “가치 체계”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체계를 형성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건, ADHD를 가진 우리로서는 더 잦게 발생하고, 또, 더 중요한 문제 같아요. 투약치료를 계속해 나아감에는 변함이 없지만, 저는 저의 가치 체계를 다시 세웠습니다.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입니다. 제가 사랑하고, 저를 사랑하는, 그 모든 사람들. 제 애인님과, 제 가족과, 제 친구와, 나아가 삶에서 마주하게 되는 모든 이들. 그들이 제겐 제 일의 가치입니다.
그 다음이 일입니다. 일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인문학과 출신의 개똥철학으로 조금 더 들어가보자면, 생계 수단으로서의 일 뿐만 아니라, 일과에 각자의 중요한 가치에 따라 저에 의해 수행되는 모든 행위들로 확대해서 생각해봅니다.. 그건 재미를 위한 것일 수도, 발전을 위한 것일 수도, 그저 살아가기 위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행위없는 삶은 없다는 사실, 삶이 곧 행위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두루뭉술한 말을 왜 하는 거냐면, 행위하지 않는다면 살아지지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말하고 싶어서에요. 누구 들으라고 하는 게 아니라 저에게 상기하기 위해서. 멈춰서지 말고 행동하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관계를 소홀히 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행동을 소홀히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에드워드 할로웰 박사는, ADHD를 핑계 삼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더군요. ADHD와 투약치료를 핑계 삼는 건 매력적인 일이지만, 위험한 일이라고요. 자기자신에게 혹독한 규준을 씌워 속박할 필요는 없겠지만, 질병을 핑계 삼는 건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는 것을 넘어서, 발전의 한계를 만드는 행동인 것 같습니다. 투약치료를 탐구하고 관찰하는 건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삶을 결정할 중대한 요소라고 생각하는 건, 그 안에 삶이라는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다양성의, 진귀하고 아름다운 것을 스스로 제한하는 행위인 것 같아요.
ADHD가 제 삶을 더 이상 옭아메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시작한 투약치료인 만큼, 그것이 제게, 살아가는 대로 살아지는, “삶”이라는 이름에 담긴 그 진정한 의미를 되찾게 하여준 만큼, 제대로, 살아 나아가 보려합니다.
이전 글에 댓글 남겨주신 분들, 시간 내어서 읽어주셨던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같은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여러분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 같은 일이에요. 여러분들의 고통과 염원을 공감하며, 우리 모두가 충만한 삶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시간 내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