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를 모르고 살 던 시절엔 사람들이 저를 보고 '매우 꼼꼼하고 정확한 사람'이라고 묘사했고 저 스스로도 그게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수첩을 몸에 항상 소지하고 다니면서 선생님들이 흘리는 말들을 다 기록했습니다. 제 머리가 기억할 일을 줄이기 위해 본능적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자습 시간에는 집중이 안돼서 20-30분마다 과목을 바꿔가며 공부했고, 딴 짓을 안하기 위해 스탑워치를 앞에 세워뒀습니다. 결과적으로 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냈고, 저는 제가 굉장히 똑똑한 사람인줄로만 알고 살았습니다.
20대 후반에 처음으로 ADHD를 의심했고, 결국 진단 받아 약물치료를 시작했습니다. 그 때 저는 -아무리 꼼꼼히 읽고 확인해도 남들 다 챙기는걸 혼자 못 챙기는 사람-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약을 먹고 나니 '사소하지만 그래서 더 스스로가 한심해 보이게 하는' 문제들이 많이 줄었습니다.
약을 몇 년 먹고 나니 이제 적응이 되었는지 점점 긴장이 풀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엄청 꼼꼼히 하려고 노력도 안하고... 실제로 덤벙대서 일을 한 번에 끝내기가 참 어렵습니다. 약 덕분에 긴장을 좀더 풀고 살아가는 것은 좋은데 결국 알맹이는 드러난다는 점이 아쉽네요. 그치만 저는 이게 훨씬 좋습니다. 성적을 더 잘 받기 위해 나 스스로를 못살게 굴었을 때는 삶에 즐거움이 거의 없었거든요... (지금도 삶이 팍팍하긴 하지만 ㅋㅋㅋ)
ADHD를 알게 된 것에, 그리고 약을 먹게 된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