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생각과 고민이 많았다.그리고 이유없이 우울에 빠지곤했다. ( 이유는 분명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 했다 ) 내게 우울은 난데없이 찾아오는 불청객과도 같았다.행복한 날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했다. 밥을 안 먹어도 배고프지않고 잠을 안 자도 피곤하지 않았다.늘 행복하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조금이라도 행복하면 샘이나는지 질투가났던 모양이다. 우울이라는 쳐다보기도 싫은 불청객이 말이다. 봄은 유난히 싫었다. 겨울 내내 얼어붙어 있던 마음이 제대로 녹지도 않았는데, 개나리는 서둘러 샛노란 봉오리를 틔우고 있었다.여름은 싫지도 좋지도 않았지만, 가을은 다시 괴로웠다. 푸른 잎이 붉고 노랗게 물드는 걸 보고 있으면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간신히 여름을 견디고 조금 숨통이 트이는가 싶으면, 곧바로 모든 잎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는 계절이 올 거라는 사실이 두려웠다.겨울은 가장 견디기 어려웠다. 그해에 이룬 것도 없었고, 다가올 새해에 이루고 싶은 것도 없었다. 어릴 때부터 겨울은 늘 새로운 학급, 새로운 친구, 새로운 환경 앞에서 잔뜩 긴장하는 나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계절이었다. 그래서 무기력함이 더 짙게 내려앉았다. 어릴 적 상상 속의 미래에는 ‘어른이 된 나’라는 모습이 없었다. 아무리 떠올려도 어른이 된 내 모습을 그릴 수 없었고, 만약 그때까지 살아 있다면 그제서야 알게 되겠지 하고 넘기곤 했다.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지금 나는 다시 생각한다.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이 질문은 여전히 쉽지 않지만, 이제는 도망치지 않고 내 삶을 정면돌파 하고자 한다. 이유 없는 불안과 우울에 휩쓸리는 대신 그 감정들을 조금씩 이해하려고 한다. 예전에는 감정이 나를 밀어붙였지만, 이제는 그 감정들이 어디서 오는지 천천히 짚어보려 한다. 견디기 어려웠던 계절들도, 사실은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내 마음이 반응하던 방식이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 사실을 인정하자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여전히 흔들릴 때가 많고, 여전히 내일이 막막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도 예전처럼 이유를 알 수 없는 혼란 속에서 길을 잃지는 않는다. 이해한 만큼 숨이 덜 막히고, 받아들인 만큼 앞으로 나아갈 여지가 생긴다. 비록 답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제는 멈추지 않고 내 삶을 바라보고자 한다. 아주 느려도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을 만큼은 성장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