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칫하면 나의 모든 상처를 흡수해 버리는 내 방 모든 물건들은 기어이, 또, 그 짓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그래서 또다시 밖으로 달아나는 중이다.
살아있는 한 이 짓은 끝도 없을 것이며, 이걸 끊어낼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걸 다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두려운 게 너무 많다.
또다시 저질러 버린 폭식. 대책 없이 줄어드는 통장 잔고. 쥐구멍으로 숨고 싶게 만드는 실수들. 매번 미루고 또 미루는 나와의 오랜 약속들. 머릿속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켜지는 생각들. 매일 밤 꿈속에서도 나를 향해 윽박지르는 가족. 세상 그 어떤 곳과도 제대로 연결되지 못하는 고립. 몸부림치고 비명 지르면서 쫓기듯 헤쳐온 인생 과제들.
10년 가까이 나를 괴롭혀온 우울증. 그리고 너무 뒤늦게 진단받은 ADHD.. 그 때문에 너무 높아져 버린 인생 레벨. 정신질환들과 싸우며 어영부영 살다 보니 어느새 삼십 대 중반이 되어버렸고, 나는 오늘도 내가 싼 똥을 치우고 있다.
어렵게 시작하더라도 옆에서 꾸준히 지켜보고 일으켜주는 이가 없으면 순식간에 고꾸라진다. 그동안 혼자서만 끌어안고 있던, 이야기되지 않았던 괴로움들이 내 안에서 썩어들어간다. 그래서 나를 광장으로 조금씩 밀어내보려 한다. 나 자신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쪽팔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꾸역꾸역 해낼 거라 믿어보며.
그렇게 어떻게든 나를 잘 돌보려 한번 애써보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