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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흐름대로 1
Level 3   조회수 38
2019-07-18 14:55:35
내가 살면서 인생에 최대 고민이라고 느낀 건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면서였다.

나는 일을 너무 잘 관둔다.

내 스스로 자존감이 높고 건강한 자아를 가졌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일했던 사람들하고 무던하게 잘 지내는 편에 전 직장들 사람들에게 연락도 오고
종종 일을 해달라는 연락도 받곤했다.

스스로도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 일을 하게 되었을 때 적응도 금방 잘 하고
늘 듣던말은 "원래 있던 사람 같아요." 라는 말이었다.

굳이 일이 아니더라도 다른 곳에서도 무던히 잘 지냈지만 어떻게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다른 사람과 트러블이 없을 수가 있을까?

20살 이전엔 아무래도 자아형성이 덜 되어있을 때라 뭐가 나쁜지 좋은지도 잘 모르겠고
내가 어떻게 비춰지고 사람을 대할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몰라 아이들이랑 잘 지내지 못했던 경우가 종종 있기는 했다.

나도 상처를 받았지만 상대방도 나때문에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학창시절에 나에게 정신적으로 학대를 가한 동창들의 행동이 정당화 되는 것도 아니고
법에 접촉되지 않는 선에서 교묘하게 사람의 심리를 이용해
자신과 같은 -그들이 생각하기에 어쩌면 모자랐을- 또래인 나를 힘들게 했던
동창들의 나쁜 모습이 여전히 내 머릿속엔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그것이 뇌 속에 존재하는 장기 기억일지라도 20대 후반이 되고
1분 1초가 흐르는 시간속에서의 나에겐 갈수록 아무렇지 않은 일들이 되어가고있다.

덕분인지는 몰라도 과거에 받은 일련의 일들로 인해 나름의 경험치가 쌓여
사람 대하는 일에는 보다 어느정도 능숙한 사람이 되어버렸지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왜? 직장속의 인간관계도, 일도 서툴지 않는데 그만두는걸까?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정신과를 다닌지는 이제 4~5개월 정도 되어가는 것 같고 에이디 진단을 받은지는 3~4개월 정도 된 것 같다.

처음 정신과를 내원하게 된 계기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전 직장 상사와 굉장한 트러블이 있었고
덕분에 몸도 급격하게 살이 빠졌을 뿐더러 일을 해야하는데도 불구하고 정신적으로도 매우 지쳐 있어서였다.
평소 통통한 체격이라 육체적으로 살이 빠지는게 좋으면 좋았지 속의 오장육부가 서서히 망가져가고 있다는 생각보단
내가 내 정신을 잡지 못하면 진짜 큰일이라도 나겠다는 생각이 먼저였고

우리 가족 중에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정신과라는 곳에 처음 발을 내딛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 들어갔을 때 병원이라면 당연히 풍길법한 알코올냄새보다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노랫소리와
깨끗하고 조용한 실내가 눈에 들어왔다.

떨리는 손으로 접수를 하고 자리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곧 내 차례가 되어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정신과 선생님께 처음으로 나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처음으로 일하는 상사와 트러블이 있었으며 일 말고도 개인적으로 평생 이루고 싶은 꿈에 관해 해야 할 일들이 있는데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아 다니던 학원에서 늘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해야하는 것을 알면서도 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론 부정적인 피드백으로 이어져 자존감이 낮아지고
이것이 지금 당장이 아니라 평생 이어진다면 고단한 현대 사회 속에서 평생 내가 원하는 꿈 하나 못 이루고
루저로 살 것 같다는 이야기까지.

덤으로 잠도 잘 못자겠어서 불면증도 있을 것 같고 뭣보다 내가 우울증인 것 같으며
어릴때부터 가정환경이 정신적으로 좋지 않았고 그래도 꿋꿋하게 버텼지만
지금 당장 죽겠어서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이 곳에 왔다고.

별에 별 이야기를 다 해버렸다.

선생님은 나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어줬고 이어서 자율 신경계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에서는 심장박동수가 불규칙하고 기관들이 팽창되어있고 스트레스가 엄청 심하다는 내용이었다.
나름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검사에서도 이렇게 나오니 너무나도 신기했다.

그렇게 진료가 끝나고 돈을 지불하기 앞서 생전 처음보는 약들을 일주일치 처방을 해주셨다.
다시 이곳에 내원하는 날짜를 일주일 뒤로 잡고
집으로 돌아와 자기 전 약을 먹으려고 봉투를 찢는데 이게 무슨 약인지 궁금해졌다.

그냥 드는 호기심이었다.
내 몸에 들어가는 약이고 처음으로 정신과에서 받은 약인데
아무런 생각 없이 호로록 먹고 자기엔 좀 그렇잖아?

육체적으로 통증이 확연히 보일 때 병원에서 처방 받는 약은
약 봉투에 어떤 약이고 효과와 효능이 무엇인지 자세하게 쓰여있었지만 원내에서 처방받은 약이라
육안으로 보이는 것 외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알록달록해서 이쁘긴하네.

이불에 누워 핸드폰을 켜고 검사를 해보니 불면증이 있을 때 먹는 약과 우울약이었다.

그렇구나.
이런 약을 주셨구나.

하필 약에 대해서 호기심이 발동해 그것에 대해 다 찾아보고
후기들과 지식인들을 보느라 약을 먹고 나서도 결국 밤을 지새웠다는게 유머였지만
플라시보일지는 몰라도 일하는 동안 마음은 전보다 편안했다.

얼마만에 찾는 안정인지.
같이 일하는 상사 얼굴만 안보면 딱인데. 이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우울이 어느정도 해결된다면 지금 하는 일을 계획했던대로 오래 일 할 수 있지 않을까?

작은 희망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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