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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6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 쓰는 부정적인 글
Level 3   조회수 153
2019-10-17 02:17:03

1. 그게 도화선이었을까. 수업 때문에 강의실로 향하는 통로가 유달리 좁다. 두 사람이 지나가면 가득 찬다.

며칠 전 한 커플이 손을 잡고 내 앞에서 걷고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즐겁다는 듯이 큰 소리로 떠들면서 말이다.

닫힌 구조라 울리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언성을 높이며 떠드는 커플을 뼛속까지 증오하였다.

급해서 빨리 가야한다고 말하고 비켜 달라고 했는데도 손을 붙잡고 걷고 있었다.

앞으로 다가올 비극을 일부러 외면한 한 연인들의 모습이 저런 모습일까.

그 짧은 찰나에 죽을 때까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어리석은 커플들이 가소롭게 느껴졌다.



3. 사람은 누구나 사회적 가면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다른 이들은 어떠한 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가면이 꽤나 두껍다고 생각한다.

착한 사람, 사려깊은 사람, 남을 즐겁게 하려고 애쓰는 정직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가면이었겠지.

오늘은 그 가면을 썼을 때 호흡이 힘들다는 것을 느꼈다.

차라리 냉소적이고 냉담한 나의 모습을 그냥 보이고 싶었다.

지금껏 헤프게 웃었더니 입꼬리 근육이 자주 저려왔었다.

평소 나에게 굴욕감을 주었던 인간들에게 씹어먹어 죽여버리겠다는 그 독한 '살기'를 품고

남들의 불행을 외면한 채 이기적으로 남의 것을 탐하였다.

그렇다고 그들을 살해한다는 것은 인륜적으로 문제가 되는 일이니

독서나 공부, 운동과 같은 '나름 합리적인 요소'로 해결했다.


초등학생 때 학습부진아로 낙인찍혀 2년 간을 학교에서 나머지 공부를 했던 내가

공부 좀 한다고 으스대는 인간들 '죽여버리겠다고' 독을 품고 공부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오랜 시간 뿌리를 다지며 준비해와서 나는 목표를 이루었지만

그 인간들이 다시는 나를 넘보지 못하게 가루가 되도록 짓밟았어야 했는데

그것을 못한 내가 한스럽고 안타깝게 느껴진다.


4. 이후 나는 이유 모를 초조함에서 잠시 해방되었다.

나는 본디 불공평한 상태에서 태어나고 유전적으로 결함이 있음을 '깨달았어야' 했는데

'뭐 그런가 보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할 수 없다', '해 봤자다', '네가 무슨 힘으로 그걸 하려고 하느냐' 등

인생에 변명만 늘어놓은 인간들을 정신적으로 '사망 선고'에 이르게 하고 싶다.

'나는 할 수 있다', '나의 한계는 없다'와 같은 진부하고 어설픈 긍정적인 마인드가 아닌

그들의 가지고 있던 뿌리 깊은 가치관을 붕괴시켜 괴로워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바라보고 싶다.

(물론 그들에게 변명할 여지를 줄 수 없게 말이지)

상담관들이나 주변에서 위로하는 인간들의 어설픈 긍정 마인드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글에서 나오는 부정적 인간 군상들이 오히려 내겐 힘이 되었던 것 같다.


5. 나는 오늘 공식적으로 상담을 중단했다. 아직 많은 회차가 남았다.

상담을 진행할수록 항우울제와 수면유도제를 먹으면 발생하는 기억 상실증 때문에

지금껏 어떻게 살았냐는 질문에 추상적이고 뭉뚱그려 대답하는 스스로가 혐오스러웠다.

이미 수다방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문제의 실마리르 해결했다.

그런데 나는 도대체 무엇을 기대하고 상담을 나갔던 것일까?

"형설지공씨는 이제 25살이고 중요한 인생의 기점에 서 있다. 여기서 수면과 식습관, 건강을 전부 놓아버린다면 앞으로의 인생은 좋아보이지 않을 것이다."

맞다. 정말 감사하게도 내가 지금껏 잊고 살았던 인생의 중요한 진리를 다시 일깨워주신 것이다.

내가 달력에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고 적는 것은 부차적인 일이다.

그 상담관 앞에 가서 "실천이 잘 안되요." 하고 징징거리는 모습을 생각해보라. 정신적으로 게으른 인간의 모습이 아닌가.

곧장 상담센터에 전화해서 정식적으로 상담을 중단할 수 있느냐 확인을 한 후

내가 왜 상담을 중단하는지 합당한 이유-내가 판단하기에 논리적이었다고 생각하는-를 전달하였다.

나를 담당하던 상담관이 왜 그만두는지 궁금해할 것이고 이에 대해 전화할 것이라 했는데

이미 나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였고 다신 여기로 절대 전화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내가 상담을 그만두는 이유에 대해 자세하게 들은 혹자는 내가 빈정 상해서 상담을 그만두었으리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전혀 감정으로 대응하지 않고자 스스로에게 유예 시간을 두었다. 그리고 이번 통화는 그 시간을 통해 내린 결론이다.

유예 시간 동안에 한창 약 먹을 당시, 최고로 암울한 상황에서도 헛된 희망을 품으며 삶을 개선하겠다고 외치던 글을 보았고

단톡을 통해 비생산적 대화를 나누며 공허함을 달래는 내 모습을 보았다.


이제 인생의 공리와 명제는 자명한 것으로 보인다. 남은 것은 그를 뒷받침할 증명이다.

물론 반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치명적이지 않은 이상 간과하고 무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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