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과 @의 관계에 대해 적은 글이 있다. 시작이 어렵다는 것을 '선천적 동기'-'후천적 동기' 라는 말로 가정했는데, 연구자들 중 이를 '동기-보상(motivation-reward) 회로'라고 부르며 @의 뇌의 동기보상회로의 결함이 일반인과 @를 구분하는 한 설명이고, 이 결함에 약물이 작용하여 @증상을 개선시킨다는 설명의 유용성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약물 관련 정보를 찾다가 알게 되었다. 역시 누구나 알고 있는 거였어...ㅋㅋ
동기-보상 회로의 고장이 문제라면 이걸 최대한 덜 사용하는 방법으로 가는 것은 어떨까?
무기력증의 끝을 겪던 얼마 전, 아침에 눈을 떠도 일어나지 못했고, 잠이 충분해서 일어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해야 할 일은 있었지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였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솔직히 다 맘에 안 들었다. 우선순위를 정하기도 힘들고 각 선택지들의 단점만 떠올라 결국 선택을 유예하다보면 오후였다. 강력한 동기가 없었을 뿐더러, 새로운 동기를 찾기 위해 매일 다른 선택을 하고 그에 따른 비용이 상당했다.
내게는 이런 경험이 몇 번 있었기도 하고, 나름 이 시기가 망가져있기 좋은 시기라 생각했기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생각을 했지만, 유예기간은 점점 끝나갔고 사회적인 통제가 사라진 상황에서 이걸 깨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언제나 한때 나를 성공적으로 굴렸던 경험을 떠올리곤 하며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대체 뭐가 다른 걸까 고민했다. 복수전공에 24학점을 들으면서도 운동동아리에 빠짐없이 참석하던 시절, 잠깐이지만 매일같이 독서실을 다니던 시절, 출근시간이 8시 반이지만 언제나 8시 이전에 도착했던 시절, 심지어 초등학교 때 전산실에서 게임을 하기 위해 아침 7시부터 나가서 전산실 문을 따던 시절까지.... ㅋㅋㅋ (이렇게 써 놓으니 시간 철저한 사람같지만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밥먹듯이 지각을 했다)
몰래 게임하던 짜릿함을 느끼던(...) 마지막 사례를 제외하면 역시 성공적 사례에서 나는 언제나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운동을 가니 가는 거고, 아침이 되면 나가는 게 당연했다. 굳이 설명하자면 이유를 댈 수 있었겠지만 내가 하는 행위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황당하게도 나의 이번 무기력증을 깬 것은 선생님과의 약속이었다. 콘서타의 부작용 배제를 위해서 오전 중에 먹어야 했고, 첫 날 일어나면서 든 생각은 '약 먹어야지!' 였다. '환자로서의 의무' 도 있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다행히도 그렇게 시작된 아침 기상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밤에 잘 수 있다는 믿음도 아직 깨어지지 않았다. 장소를 정하니 당연하게 아침이 되면 그곳으로 갔다.
연습 중인 김연아에게 한 인터뷰 장면이 화제가 되었다. 연습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느냐는 취재자의 질문에 '그냥 한다'라고 답하는 김연아.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다. 물론 좋은 결과를 내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겠지만 매 순간의 '고민 없는' 꾸준함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준다는 당연한 믿음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정상급 운동선수들은 다들 연습벌레이다. 그들은 '연습을 해야 한다' 라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연습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라는 생각을 한다. '생각 없는 연습'을 위해 수많은 코치진과 트레이너들이 '대신' 고민해준다.
'열정은 쓰레기다' 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원제: How to fail at almost everything and still win big - 거의 모든 일에 실패하면서 크게 얻는 법) 스캇 애덤스의 책의 내용 중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목표는 실패한다. 시스템을 구축하라" (여기서 말하는 목표는 인생관이나 신념이 아닌 계획 수립에서의 목표이다) 우린 수많은 목표를 세운다.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한다. 만일 금연 목표를 세웠는데 2년 차에 실수로(?) 한 대를 피웠다. 그럼 금연에 실패한 걸까?
목표를 기반으로 한다면 금연은 실패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는 '다시 담배를 필' 명분이 주어진다. 어차피 실패했는데 뭐. 하지만 금연이 시스템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담배를 '한 대' 피웠지만 여전히 난 담배를 피지 않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대로 지속하면 된다. (참고로 흡연을 영어로는 'smoking habit' 이라고 부른다)
목표의 장점은 '가시성' 이지만 이로 따른 폐해도 크다. 부분적 성공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만일 당신이 입시를 준비한다면 원하는 대학에 못 가는 건 목표 달성에 '실패'한 것이다. 이게 부분적 성공이라고 생각한다면 사실 반은 냉정하게 말해서 '위로문구 혹은 정신승리'가 된다. (실패나 거절을 목표로 삼는 건 달성 가능한 목표라는 변칙적인 경우로, 이것 자체가 달성 여부보다는 횟수에 기반한 시스템이라 하겠다)
뭣보다 세운 목표 자체가 '달성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달성 예상 시점에서 불가능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생전 운동도 안 해 봤고, 직장 때문에 하루 한시간도 내기 힘든 사람이 1달 만에 30kg 빼기를 목표로 잡는다면 미친 것이다. 이를 노력 따위로 폄하하는 세태는 사회적인 손실이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목표의 부분 달성은 어떨까? '10kg 뺐으니 잘했어, 이제 보상을 줄까'. 무기력함을 허락하는 위험이 있다. 운동선수라면 괜찮겠지만 일반인에게는 체중감량이 '반짝 이벤트'가 될 가능성도 있다. 한편 그렇게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용한 자원을 모두 끌어모으면 일상이 부서지고 자기 자신이 부서진다. 실패하면 손해지만 우연히 성공해도 손해이다. 여러 장애 요인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성공했으니 이는 '성공 경험'이 되어 남에게는 '꼰대', 나에게는 '자기학대'의 근원이 되고 만다. '까라면 까' 식의 '비스마르크의 성공 사례'를 들며 불가능한 목표를 강요하는 사회. '생존자 편향'은 빠져들기 쉽다. (생존자 편향: 2차 대전 때 전투에서 생환한 미군 전투기 피격부위 통계분석의 오류에서 비롯됨.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했다' -> '그래서 성공했다' 의 요인 분석 오류) 시스템의 핵심은 '습관'이다. 보상(목표 달성)이 없어도 움직인다. 고민이 필요 없다. 수영장에서 레인을 수십바퀴씩 도시는 어르신들. 빠르진 않지만 저항을 최소화하여 적은 물질로 나아간다. 저항을 줄여야 한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동기-보상회로를 작동시켜야 하겠지만 일단 굴러가기 시작하면 두발 자전거에 붙은 보조 바퀴처럼 떼어내 버리자. 목표는 네비게이션에 뜨는 예상 도착시간 정도로 쓰면 된다. 예측에 도움이 되지만 실제로 맞지는 않으며 매 순간 계산되어 다시 설정되는.
법으로 비유하자면 인위적으로 제정한 법보다 관습법이 습관과 비슷하다 생각한다. 반복적으로 시행된 일반 관행이 '법적 확신'을 얻는다. 즉, 계속 해왔고 '당연해서 지키는' 것이다(한편으로 잘못된 습관은 깨어져야 한다). 습관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선 여러 책이나 좋은 의견들이 있을 것이다. 예전에 공신 강성태씨가 66일 프로젝트를 했던 것이 기억난다. 66일은 충분한 반복의 관점에서 괜찮은 기준으로 보인다. 환경, 주변, 도구 등의 도움을 받는 것은 필수이다.
동기-보상회로의 작동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의 대응에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지속가능한 개선, 시스템 구축을 위해서 습관을 장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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