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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쓰는 글
Level 4   조회수 108
2020-01-20 05:54:29

1. 

하늘에 건물이 없다. 도로에 차가 없다.

카페도 편의점도 없다. 도로변으로 잠깐 들어가면 산이고, 날 보는 눈은 거의가 집집마다 키우는 동물들이다. 버스도 지하철도 없는데 한시간쯤 가면 나오는 거리에는 그 모든 게 다 있다. 굴 먹으러 놀러 온 사람들이 시골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 글을 쓰는 이곳은 시골의 시골인 셈이다.


2.

여기서 서울을 간다고 해 보자. 역까지 무지막지하게 멀 줄 알았더니 16km. 하지만 가깝다기엔 여긴 대중교통이 없다. 도로를 따라 자전거를 밟는 것도 좋겠지만 속도전이라고 생각하고 아빠찬스를 쓰면 네이버 지도상 30분. 거기서 바로 열차를 탄다고 가정하면 3시간 30분이다. KTX 첫차가 5시 반이니까 미리 약속만 잡혀있다면 당일치기 홍대도 불가능은 아니겠네.


서울부산을 왕복하며 놀러오던 중국 친구가 그러더라. 한국은 중국의 한 성보다 작다고.


3.

시골집 앞에는 마당이 있다. 나무도 몇 그루. 마당 밖은 숲이고, 야트막한 대숲을 지나 나가면 갯벌. 어디에도 시계 걸린 건물은 없고 원래부터 재는 게 아니라는 양 바닷소리만 박자에 맞춰 들려온다. 아침마다 우는 닭 정도가 가장 시간적인 존재다. 중요과목 3과목이 60분이 아니고 63분이라고 머리를 쥐어뜯던 내가 우스꽝스럽다.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느낌을 받을 거리가 없다. 앞집에 뺙뺙거리는 병아리는 닭이 될 것이다. 트럭 밑에 숨은 새끼 고양이는 다 큰 고양이가 되어도 귀여울 것이다. 나는...? 네모진 건물에 네모진 이름표를 쓴 뭔가가 되어도 귀엽지는 않을 것이다.


4.

시골의 시골에서 "도서관"을 검색했는데 1킬로미터 못 가서 잇올스파르타 독서실이 나온 건 도대체 어째서야...!


5.

진정하고 가장 가까운 국립대 도서관을 찾아봤는데 4킬로. 시립도서관이 5킬로. 길이 구불구불 밭따라 논따라 걸어야 시내가 1시간 만에 나오던 나의 "시골"은 이미 도시 변두리가 되어 가고 있다. 


내가 여기서 시험을 치면 합격하는 곳은 5킬로 밖의 도서관이겠지. 부산에 비하면 시골이지만 부산 서면 정도의 도시도 싫고 역겨운 내가 아니었나. 걸어 5분에 바다 1시간에 도시 30초면 산인 곳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10년이면 여기도 카페로 가득해지겠지만...


6.

오늘 아침은 페니드 없이 시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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