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매일같이 떠들썩한 바이러스 때문에 병원 가서 상담도 못 받고 가족들한테 대신 약 받아 달라고 말해서 한 달치를 한꺼번에 받아왔습니다. 아주 공교롭게도 제 고향은 대구고, 별로 가고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강아지도 있고 진단을 받았던 병원이 있는 도시여서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꼭 방문해야 하는 곳입니다. 병원을 서울 쪽으로 옮길까 싶었지만, 그러려니 일단 재검사에 대한 시간과 자원을 당장 감당하기는 힘들어 고민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 상태이다 보니, 날마다 전화를 거시는 어머니의 걱정도 솔직히 지겹습니다. ADHD 환자이면서 자기 인생의 즐거운 이야기를 정말 즐겁게 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늘 듣는 사람들은 건성으로, 공감하지 못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니 습관적으로 자학 개그와 블랙 코미디로 웃어 넘기게 됐습니다. 그 중의 일부는 보통의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으니깐요. 물론 그들은 저희가 겪는 정도의 심각성을 절대 모를 겁니다. 저는 아주 오랫동안 극한의 상황에서 버텨왔기에 늘 극한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줄 알고, 안 그래도 된다는 말을 들어도 절대 쉽게 받아들여지지가 않습니다. 쉬운 길이 있는 거야 물론 알지만, 그렇게 하면 스스로 만족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에 대한 개운치 않은 느낌이 계속 남아 신경 쓰게 됩니다. 그건 결국 스트레스가 되겠죠. 관성의 법칙이라고 할까요,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으니 눈꼽만큼만 해도 된다는 말을 들어도 정말 눈꼽만큼만 하면 안될 거 같다는 생각만 듭니다. 회사에서 신입에게 바라는 것은 없다는 말을 들어도, 그만큼의 돈을 투자하는 나에게 정말 바라는 게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저에게 맡긴 일이 쓸만 하면 나중에 실제로 사용하겠다는 말만 들렸습니다. 그럼 아무튼 쓸만하게 해내야 할 거 같고, 그러면 기존에 회사에서 하던 방식에 적합하도록 해내고 싶었습니다. 제 욕심이 과했던 걸까요? 뒷일을 생각하며 모든 일을 똑바로 해야 한다는 강박의 저를 세상 사람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피곤하게 산다고, 어차피 소용없을 짓이라고 합니다. 저는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더 이해되지 않습니다. 물론 제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문제 되지 않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저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문제가 됩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가 아니니깐요. 어디에서든, 매 순간이든 다수의 사람들일 거니깐요. 전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바이러스로 감염 돼서 죽는 게 무섭나요? 이렇게 계속해서 침체되는 경기 때문에 살기 힘들어지는 게 걱정되나요? 저는 늘 이렇게 이해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지금을, 오늘을, 내일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훨씬 공포스럽습니다. 그들은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삶을 쳇바퀴 굴리듯 반복해서 살아야 하고, 어차피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보통의 다수에게 일말의 기대를 품고 이해를 구걸해야 하니깐요. 그런다고 그 다수가 이해해 줄까요? 제가 살아온 삶의 관성을 이기지 못하듯, 자신들도 그렇다고 말하겠죠. 저 하나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려고, 조금이라도 더 의욕이 생기는 일을 고집했던 게 잘못이었을까요? 그냥 적당히 제가 잘할 만한 일에 만족할 걸, 괜한 도전을 해서 남들도, 스스로도 피곤하게 만든 걸까요? 저는 코로나보다 제 삶이 더 무섭고 끔찍합니다. 앞으로 제가 겪게 될 몰이해와 정신적 피곤함 역시도요. 그들에게는 제가 그냥 제거하면 전체 조직을 살릴 수 있는 하나의 박테리아겠지만, 저에게는 그들의 사회가, 사고방식 자체가 바이러스 같습니다. 제 정신과 신체를 피곤하고 괴롭게 만드는 바이러스요. 당연히 그들은 숙주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고 할 겁니다. 그럼 저는 없앨 수 없는 제 ADHD 탓만 해야겠죠. 약도 늘리고, 바꿔도 보고 하면서 세상의 다수에 끼워맞춰 보려 안간힘을 다 쓰겠죠. 그리고 그만큼 늦어지고 그만큼 낭비되고, 그만큼 지칠 겁니다. 정말로, 코로나로 죽는 거보다 저는 이 병을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저의 앞으로 삶이 더 무섭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