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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내기
Level 3   조회수 92
2023-11-22 10:16:06


 쏟아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힘든 요즘이다. 짝꿍이 의지박약이라고 가볍게 이야기 한 게 아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지는 않구나. 그래 그렇게 보일 수 밖에 없지. 그걸 알지만 조금은 서운했던 거 같다. ADHD랑 공존하겠다는 다짐이 잠깐 취소되는 순간이었다.


 요즘 가장 나를 힘들게 하는 문제는 가족이다. 가족과의 관계. 끓을 수도 무시할 수도 없는 관계이다. 나를 사랑함이 분명한 가족이지만 나는 사랑할 수 없는 가족이다. 이제 22살. 언니는 25살인데 벌써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나는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데 누군가 내 발목을 잡아 묶어두는 느낌이다. 그냥 각자도생 하면 안되나? 나는 교정도 내 돈 내고 하는데, 친구는 부모님 지원 받는다. 나보다 4살 연상인 애인도 부모님한테 지원 받는데 우리 부모님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하루 살이 들이라 자식한테 내어줄 재산 같은 것도 하나 없다.

 어린 시절 내 환경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나는 누가 봐도 가난한 집 애였다. 학교 선생님이 뭐 하나 더 챙겨주신다거나 하는. 아빠는 매일 술을 먹었다. 멀쩡한 아빠는 무뚝뚝하고 말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술에 취하면 새벽 내내 말을 했다. 어쩌다가는 엄마에게 소리 지르고 욕을 하기도 했다. 신체적 폭력은 없었다. 우리 집에서 살아본 적 없는 사람들은 그냥 부부 싸움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신체적 폭력만 없었을 뿐, 가정폭력을 당한 거뿐이다. 차라리 때리거나, 술 안 먹었을 때도 언어폭력을 했다면 완전히 연을 끊어낼 수 있었을 텐데. 그럴 수도 없게 아빠의 정은 분명하게 느껴졌다.


 객관적인 사실만 보자. 아빠는 나를 사랑한다. 나를 성희롱하기도 했다. 아빠라서 괜찮다며 계속 놀렸다. 나는 화를 내고 짜증을 냈다. 중학교 3학년 때 나에게 실수한 이후로 더 이상 그러지는 않았다. 아빠에 대한 양가감정은 깊어지고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분명 나를 사랑하는 아빠고 방법이 잘못되었을 음을 알지만 나의 성장하는 한 부분을 지켜보면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를 불쾌하게 만들고 의심하게 만든다. 아빠는 불쌍한 사람이기도 했다. 무뚝뚝하고 거절을 잘 못하는 아빠는 술에 취하면 놀리는 걸 좋아하고 말이 많으며 하소연에 가까운 화풀이를 했다. 어릴 때는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엔 엄마에게, 엄마가 없으면 엄마를 찾고 엄마가 있으면 나가라고 화를 냈다. 그렇게 엄마가 집에 없던 날은, 엄마에게 전화하라며 잠을 깨우고 화를 내기도 했다. 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던 아빠. 새벽 내내 말을 걸고 하소연하던 아빠. 어떤 아빠가 진실일까.


 엄마, 아빠와 가끔 얼굴을 본다. 내키지는 않지만 아빠가 필요한 일이 생기면 부탁은 해본다. 아빠가 운전연습을 도와줬을 때 아빠의 표정을 보고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빠는 무슨 생각 중일까. 사실은 귀찮아하고 있는 거 아닐까. 거절을 못 해서 마지못해 해주고 있는 거 아닐까. 아빠라는 책임감으로 마지못해 나를 대하고 있는 거 아닐까. 아빠의 진심은 도대체 뭘까? 독립한 딸에게 전화 한번 하지 않지만 본가에 가면 반가운 티를 낸다. 그리고 나는 아빠를 거부한다. 아빠와 잘 지내는 척한다.


 마음을 여유롭게 가져보자. 초조해봤자 어쩌겠어. 되는 건 하나도 없는데. 되는 대로 살자. 머리 속이 복잡하면 그냥 다 버리자. 마음껏 화를 내자. 내 마음 풀릴 때까지 마음대로 살자. 다짐했다. 쏟아내기로.



(개인블로그에 올린 글인데 에이앱 분들도 보셨음 하여 수정해서 올려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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