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주말은 정말로 할것없는 주말인가 싶다. 근데, 정말로, 오늘은 정말로 할것없는 주말일까?
오늘이 정말로 할것없는 주말인가 생각해본다. 잠깐의 고민끝에 오늘은 정말로 할것없는 주말은 아니다 결론짓었다.
그런데? 그럼 오늘은 할것이 없는 주말은 아닌데, 무얼하지?
일단은 페니드를 먹고, 점심밥을 꾸역꾸역 먹고나선 의자에 앉아 생각한다.
' 일단 일을 구할까? 코로나가 끝나면 취업전선이 터질게 불보듯 뻔한데. ' ' 어 근데 잠깐만 그건 오늘 오후에 해도 되지 않을까, 지금은 그냥 하고싶은걸 하자. 근데 그래도 될까? ' ' 그래, 일을 안해도 오늘은 주말이잖아, 오늘은 일단 하고싶은걸 하자. ' ' 근데 하고 싶은게 뭐지? '
그렇게 오늘의 할일 생각하면서도, 공허한 느낌이 들어서 밖에 나와 담배를 피웠다.
그나저나 집밖은 코로나가 유행해도 평범한 어느 봄날과 같았다. 마스크를 껴도 사람들의 표정은 평화로웠고, 햇살도 여타 다름없이 따듯하기만 했다. 그 햇살을 몸으로 맡으니 마음속에서 공허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지워지는 느낌이다.
그 순간 내가 뭘 할까하는 생각이 날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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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되서, 오늘은 빨래를 하기로 결정했다.
오래된 세탁기의 플러그를 멀티탭에 꽂고 옷장에서 옷들을 꺼낸다.
구멍난 양말과 발이 커서 안맞는 페이크 삭스, 사람은 모름지기 하얀 옷을 입어야 한다 생각하며 산 흰 티셔츠. 너무 오래입어서 소매가 까매진 윈드브레이커, 늘 몸처럼 여겼지만 살짝 찢겨지고나서 관계가 소홀해진 초록셔츠. 그리고 너무 많아서 빨래하기 귀찮은 청바지들 ...
' 정말 구질구질한 옷들이지만, 그래도 빨고 다려주면 전보단 이쁘겠지. '
그렇게 생각하며 세탁물을 고르던 도중 옷에서 온갖 라이터들이 나왔다. 아마 이 라이터들도 깜빡해서 안가져와서 산것들이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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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서 오래된 노래를 틀어 빨래를 시작한다.
내 생각에는 빨래는 항상 흰것부터 시작하는게 정석, 흰것들은 따로 빨아야한다. 다른옷이랑 세탁기로 혼입해 빨아버려서 흰옷이 흰옷이 아니게되면, 그것만큼 슬픈것도 없다.
일단은 흰옷부터 준비하자, 대야에 뜨거운물을 받고 표백제를 한스푼 풀고 흰옷을 대야에 넣는다. 어느정도 표백제물을 적셔주면 그 위에 베이킹소다를 한번 뿌리고 조금 주물러준뒤 기달리면 준비 끝.
흰옷이 준비가 다 됬으니 기다리는 사이에 다른옷도 세탁기에 넣고 표준으로 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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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40분쯤 뒤? 세탁기를 돌리는 이 기세를 몰아서 가방도 빨아주기로 한다. 가방들 안에는 먼지와 오래전의 회사 이력서도 들어있지만 개의치 않고 다 속을 비워준다.
아까전에 흰옷을 대야에서 빼서 행궈서 걸어놓아 말려주고, 그 대야로 가방도 똑같이 빨아준다. 가방은 자주 안빨아서 그런지, 대야가 구정물로 가득했다. 이유 없는 카타르시스가 폭발하는 느낌이다.
그렇게 가방을 다 빨때쯤 세탁기도 다 돌아가서, 옷걸이를 들여와 집밖 빨랫줄에다 하나 둘 씩 걸어놓았다.
여러 빨래들이 햇빛을 투과해서 좋은 빛을 내는걸 보고 있자니, 나는 이게 해가 질때까지 늦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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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집안으로 들어와서 문앞에 거울을 보는데, 샤워를 안해서 꾀죄죄한 내가 보였다. 밖에 해는 저리 쨍쨍하게 뜨는데, 나는 꼭 새벽에 깬것마냥 보였다.
샤워도 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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