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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크다면 더 이상 얻으려 하지 않는다.
Level 2   조회수 1091
2020-05-24 20:18:30

1. 알코올 중독 치료를 함께 받고 있다.

치료 중임에도 얼마 전 짧게나마 병원신세를 지고 난 후

이러다 정말 큰 일 나겠구나 싶어서 꽤 진지한 마음으로 치료에 임하는 중.

폐를 끼치지 않으니 상관없다 여겼는데 타인보다 먼저 본인을 다치게 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약으로 인해 갈망은 거의 없지만, 술의 표상은 여전히 떠오른다. 중독이라는 건 무섭다. 


2. 수면패턴 바로잡기

책상에 폰을 두고 잔다. 수면양말을 신는다.

다이소에서 파는 가장 작은 알람시계와 2G폰, 오디오. 세 가지가 나의 기상을 담당한다.

꽤 만족스러운 수면의 질을 얻고 있고, 매일 체크하는 수면시간이 늘어나는 게 좋다.


3. 온라인 대화와 멀어지고 있다. 

이동 중엔 무조건 손에 책을 든다.

워치가 있으니 굳이 폰을 손에 쥐고 있을 필요가 없어 가방에 넣어버리면 되는 것이었다.

약간은 강박적으로 책을 보는 듯 하지만 그래도 벌써 이주만에 두권이나 읽었다.

뿌듯하다.

단점을 꼽자면 친구들과의 일상공유에서 좀 멀어져 단절되는 기분.

그러나 어쩐 일인지 참지 못하고 만나자 청해 온 친구들과는 더 돈독해졌다.

오프라인이 온라인보다 아직은 힘이 센 건가 싶다.


4. 움직임이 가볍다.

나는 여러가지 운동을 하는데 그 중 헬스 트레드밀을 가장 싫어한다.

하지만 내게 필수적인 운동이라 늘 억지로 했었는데 넷플릭스로 액션영화를

세번에 걸쳐 보고 나니 트레드밀을 떠올렸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 변했다.

환경에 따라 3-40분이 10분처럼도 느껴질 수 있는 것이었다.

스마트폰은 카톡만, 노트북은 유투브만 보는 내게 시의 적절한 전자기기는 

정말, 정말, 복이었구나! 너무신나!


5. 바쁘다는 것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실감한다.

바쁘다는 말이 어떤건지 알 지 못하는 삶이었다.

대강은 알겠는데 정확히 어떤 의미였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는데

요즘의 나는 정.말. 바쁘다. 

이제서야 정말 바쁘면 화장실 가는 시간도, 밥 먹는 나름의 쉬는 시간에도, 

타인에게 신경을 쓰기가 힘든 것이라는 걸 태어나 처음 느끼는 중이다.

나에게 이런 순간이 온 게 신기하다.

치료를 시작하며 여기저기 환경 설정을 해 뒀으니 어쩌면 조금은 바빠졌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크게 달라졌다고..? 왜 그간 몰랐을까 싶었는데

나는 바쁜 것과 더불어 현재에 집중한다는 게 뭔지 또, 그 조차도 몰랐던 사람이었다.


6. 현재의 나에게만 집중하기

너무 사랑하는 사람들과 상황들이 나를 통째로 망가뜨릴 때가 온다.

주변환경 영향을 안그래도 많이 받는 편인데 근래에, 내가 마음을 쏟아내던 많은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엄청난 신체피로와 정신적인 번아웃.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고 잃은 것만 눈에 들어와 주변을 리셋하고 싶은 기분.


다음날 의사를 만나러 갔을 땐 3일간 거의 잠을 자지 못한 상태였다.

의사는 걱정이라 하며 덧붙여 어쩌면 좋은 테스트가 될 수도 있다 했다.

우리의 치료목표가 무엇이냐며, 현재의 나에게만 집중하는 게 치료의 핵심이다. 했다.

내가 지금 불안을 느끼는지 만족감을 느끼는지 생각하고, 어떻게 할 지 판단하라.

그리고 사람에 대한 미련이 남아,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요 란 말에 의사는 

사람은 치료를 받지 않는 한 변할 확률이 굉장히 낮다 했다.

어렵게 풀었는데 틀려버린 문제에 대한 해답을 봤을 때 그 해답이 오래 기억에 남듯 의사의 말이 자꾸 맴돌았다.


솔직히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과 상황에 대한 나의 감정은 모르겠다.

타격은 이미 왔는데 치료는 안 하고 보고만 있는 느낌. 슬프고 화가나고 회의감이 든다.

할 수 있는게 없다는 게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의사의 말대로 모든 감정을 인정하되 행동은 바꾸려 했다.

전자기기와 멀어지고 이동 중 책을 읽고 저녁부터 폰을 제자리에 고정해두고,

내가 지금 해야하는 것들을 적어둔 리스트를 보며 하나씩 할 것.


그리고 일주일이 넘었고 신기하게도 점점 분리가 되고 있는 게 느껴진다.

연습이 되고 있나보다. 이렇게 그간 있던 일을 길게 정리하는 것도 그 증거처럼 보여진다.

물론 약의 힘과 의사의 조언과 피로와 리셋 하고 싶은 마음과 정신적 지침이 모두 모여

만들어 진 분리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내게 엄청난 변화다. 희망이다.

이런 것들이 소위, 이제 바닥을 찍고 올라가고 있는 거라면 좋겠다. 간절히.


7. 생각으로만 해볼까 했던 일들을 시작하기 시작.

먹먹하다는 느낌이 이제 잘 들지 않는다.

그냥 이 시간에 이걸 하면 될 것 같다. 여기까지만 생각이 가 도전하게 된다.

그에따른 부정적인 감정은 크게 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건 좋은건지 안 좋은건지 잘 모르겠는데

전과 같은 상황에 놓여있을 때의 감정과 표현방식이 변했다.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게 단점이었지만 그만큼 행복의 강도와 표현도 컸던 것 같은데

이제는 차분한 사람처럼 보인다. 이 부분은 좀 아쉽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 걸까 아니면 억제되고 있는걸까- 

고민아닌 고민.


이런 변화들이 보여줄 모습이 기대 되지만 사실 조금 무섭다.

다른 사람같다. 주변도 생소해 하는 게 보인다. 

얻는 게 있는만큼 많이 잃어버릴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전보다는 만족스럽다는 표현을 쓰고싶다.

내 삶에 욕심이 생기는, 너무 오랜만에 느껴지는, 정말 많이 그리웠던 감정이 조금씩 든다.

이 감정이 열정이라면 정말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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