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이상 항우울제를 복용해왔습니다. 말이 5년이지 1년 이상 단약한 적도 있고 하여 제대로 먹은 기간은 훨씬 짧을 지 모릅니다... 성인이 된지 꽤 지난 지금도 약을 먹게 되었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고 오히려 상태가 나빠지기만 해 와서 저번 주, 처음 1주일치 @약을 받았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까진 공부를 곧잘 하는 편이었어요. 따로 공부를 하거나 하는 건 할 수 없었지만요. 학교 강의를 듣고 학원에 가고 강제된 시간만 공부해도 성적은 상위권에 머물렀습니다. 공부를 할 땐 다리를 떨거나 손톱을 물어뜯었습니다. 그냥 오랜 습관이었어요. 주변 친구들에게도 부모님에게도 예쁘다고 칭찬을 받았던 손톱은 점점 짧아져갔고, 근처의 피부도 울퉁불퉁 해져갔습니다. 공부하는 책은 하나를 진득히 보질 못했어요. 소설에 있어서는 어릴때부터 몇시간이고 앉아 책을 읽고, 한달에 마흔권 쉰 권도 읽을 수 있었으면서요. 시험기간에도 따로 공부를 하진 못했습니다. 여러 과목의 문제집을 바닥에 잔뜩 펼쳐두고 수학을 한페이지 보면 영어를 두문장 읽다가 그림을 그리고, 다시 국어 교과서를 읽다가 수학 한 문제를 풀고 물을 마시러 갔습니다. 그렇다고 수업 내내 초롱초롱 하지도 않았어요. 수업 중엔 밤에 아무리 자도 이상하게 곧잘 졸려왔습니다. 그런데도 성적은 상위 10~15퍼센트 사이를 오갔기에 공부를 잘 하지만 노력을 하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대인관계가 나빴습니다. 오래 전, 초등학생 시절. 심하게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병균 취급하거나 어울려 주지 않는 등의 가벼운 일이었지만 그때 당시엔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이유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랬죠. 사실 이유는 있었습니다, 좋아하던 남자애가 다른 애와 친하게 지내자 헛소문을 낸 기억이 있어요. 그 때문일 겁니다. 어느 날 등교하니 그 누구도 어울려주지 않았거든요. 그 후유증으로 우울증도 생기고, 사람을 잘 대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여겨왔습니다. 몇년간의 따돌림 끝에 중학교에 진학할 때 이사도 가고 근처의 다른 중학교로 옮겼지만 친구가 몇 생겼을 뿐, 그렇게 친화적인 사람이 되진 못했어요. 계속 도망치는 삶을 살아왔는데 여전히 대인관계가 서툽니다. 거기에서 벗어나면 어쩌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생각을 해서 장학금도 받을 수 있던 근처 지역의 기숙제 고등학교를 진학했으나 인간관계에 적응하지 못해 기숙사 방에서 매일 매일 울며 엄마에게 전화했어요. 정신과도 그때부터 다니기 시작했네요. 원래부터 있던 우울감이 감당할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해외로 가는 학교 프로그램도 참여했으나 결국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학교를 자퇴했습니다. 시험도 한번은 보지 않았습니다. 성적보단 살아남는 게 중요했어요.
아이돌을 좋아했습니다. 노력하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절망에서 일어나 성공하는 서사가 좋았어요. 제가 하지 못해서였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자퇴하고 한달여간은 일본 아이돌 예능만을 봐왔어요. 교육청에서 지원받아 갔던 해외여행, 러시아가 즐거웠습니다. 중학교도 도망치고, 고등학교도 도망치고, 학교로부터도 도망쳤지만 더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이 나라를 떠나면 어떻게든 될까 싶었어요. 일본어학원과 토플학원을 다니며 일본유학도 몇년이나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혼자서 하는 공부는 잘 되지 않았고, 막판이 되어서 시험을 포기했어요. 어쩌면 늘 지는 게 싫었기 때문에 도전조차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좋지 않은 결과를 만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요.
지금은 나이가 들었습니다. 저는 대학 졸업할 나이에 가깝지만 여전히 대학도 가지 않고, 수능도 보지 않고, 돈도 벌지 않고, 부모에게 얹혀있는 하위 인생입니다. 학교폭력과 절도로 소년원에 가던 반 친구, 제가 낮잡아보던 사람들보다 더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되어있습니다. 우울증에 시달려 하루 4시간이라도 억지로 하던 공부가 30분조차 못하게 되었습니다. 집중력이 떨어지자 어릴 때 유독 뛰어다니길 좋아하고, 말이 많고, 밝아서 어딜 가도 친구 하나는 사귀어서 밤새 찜질방을 뛰어다니며 놀다가 아침에야 잠들어 업혀갔다던 것과, 남자애들과 싸움이 잦아 선생님을 울린 것, 공부를 할때 스스로 할 수 없던 것, 손톱을 물어뜯는 것, 청소를 늘 못하고 옷도 옷걸이에 걸지 못해 침대에 던져놓고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 않던 것, 사람과 대화할 때 잘 듣지 못해 매번 몇문장은 추측으로 대화하던 것, 영상 매체에 집중하지 못해 글만을 읽던 것.. 이런 사소한 습관들이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이게 우울증이 아닐 수도 있겠단 자가진단을 하였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선 @이 아닐거라고 하셔서 몇 달 간은 우울증 약만을 먹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나아지는 것도 없었습니다. 자살시도도 있었습니다. 약을 먹으면 덜 불안하지만 그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번주에 다시 말씀드렸고 @약을 받게 되었어요. 메디키넷 리타드 10mg. 일주일간 먹고 다시 보자며 보냈습니다. 소아청소년정신과로 유명한 곳이고, 5년간 내원했다 보니 따로 검사같은 건 하지 않은 채 성인@로 약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이 또한 저의 삶의 전반적인 문제를 @에게 떠넘기려는 시도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우울증을 원망해왔고, 오래 전 저를 괴롭혔던 친구들을 원망해왔고, 이렇게 될 때까지 아무것도 안한 저를 원망해왔습니다. 과거로 돌아가면 좋겠다며 헛된 망상도 자주 하고 로또도 사고 그래왔어요. 유아퇴행적인 사고도 많아졌습니다. 덕분에 성숙하던 어린이는 어리숙한 어른이 되었네요. 애석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쨋든 @가 맞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제 바뀌고 싶어요. 이 약이 저를 되돌리길 바랍니다. 저는 어쨋든 살아갈 겁니다. 죽지 않고, 뭐든 수단을 찾아서 괜찮아질겁니다. 그게 약 한알로 해결되는 문제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와 함께 살아왔다면 이제 제가 더 강해지길 바랍니다. 오랫동안 쓸모없는 시간을 보내온 것이 아쉽습니다. 그런 생각이 드는 하루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