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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0 05 공시 합격수기
Level 4   조회수 1256
2020-10-05 21:59:06

합격수기


1.


공시가 끝났다. 21일에 합격 문자를 받았고, 이번 주 중으로 서류를 제출하면 임용을 기다리는 것밖에 남은 것이 없다.

합격만 하면 그간의 고통이 다 보상받는 기분이 든다고 강사들이며 먼저 합격한 친구들이 말했지만 나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나는 전부 잊어버렸다.


생각해보면 늘 그래왔다. 학창시절의 괴로움, 유년기 가정의 슬픔, 군대에서의 고난들까지 제각각이 그 시절에 머물러 생을 마감하고 만 사람들이 있는 고통들이지만 정작 거기를 빠져나온 나는 과거의 고통받는 나를 무미건조한 텍스트로밖에 회상할 수 없다. 공감하려고 해도 감정이 절개된 기분이다. 그냥 그 기억들이며 감정들까지 빨리 버려버리고 싶은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다소 당혹스러웠다. 엊그제쯤의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이랑 지하철을 타고 9호선을 지나가는데 노량진 역에서 눈물이 났다. 감정을 자각하기도 전에 나는 공시가 삼켜버린 죽은 사람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맘때쯤 종종 기사가 올라온다. 기사도 없이 고시촌 좋은 방이 이상하게 싼 가격에 올라온다. 노량진에서 공부한 적도 없는 나는 그런 사실들을 상기하고 있었다. 그 죽음들이 억지로 잘라낸 기억들을 상기시켰고, 그래서 노량진 안내음에 눈물이 났다. 가방을 매고 열린 지하철 문으로 나가는 사람들, 구부정한 자세. 공단기 건물에선 추석 특강이 한창이었을 것이다.  


2.


3년을 공부했다. 인서울이고, 토익은 900대고, 한번 집중하면 몇시간이고 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었던 나는 주변사람들도 그렇듯이 나도 금방 합격할 거라고 생각했다. 남들과는 달리 노력하지 않고도 괜찮은 학업성적을 이뤄 온 오만이었다. 그냥 이해만 하면 생각을 타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만 가지고서, 왜 다들 이정도 이해도 못하는지 의아해했다. 남들이 다 맞히는 저점 문제를 틀리고도 어려운 고점 문제는 잘만 맞혀왔고, 그 기형성을 스스로 즐겼다.


그 오만을 빠르게 고치지 않은 것. 그게 내가 장수한 이유 중 하나다. 100분에 100문제를 풀고 마킹까지 해야 하는 시험이다. 때문에 실수하지 않으면서, 맞힐 수 없는 문제는 빠르게 버리는 풀이전략이 중요하다. 나는 영어 어원들을 많이 알고 있었고, 때문에 모르는 단어의 의미를 추상해서 풀어내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하지만 공시는 추상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철자가 거의 비슷한 단어를 추상해서 풀어내는 것도 쉽지 않다. 단어문제는 길어도 30초 컷, 모르겠다면 그냥 버리는 게 낫다. 하지만 우월감에 도취되었던 나는 1년차까지 단어장도 펼쳐보지 않았다.(그러고도 85가 나온 게 오히려 독이었다.) 공부를 하면서도 감성에 도취되어 있었고, 때문에 이것은 학문도 아니고 자기자랑의 장도 아니며 그냥 기계처럼 탁탁 답을 맞든 틀리든 찍어야 하는 스피드 게임이라는 것을 자각도 못 하고 있었다. 영단어와 숙어 문제가 그랬고(각각 1~2문제씩 이미 10~20점이다), 국어 한자문제, 띄어쓰기 문제, 한국사 순서 문제가 그랬다. 이해했더라도 암기해야하고,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암기했다면 괜찮다. 암기했더라도 틀리는 문제는 틀리겠지만, 맞힐 수 없음을 일찍 자각하고 시간을 10초 안으로 썼다면 그것도 괜찮다. 다만 우리의 adhd 뇌는 틀린 예와 맞는 예를 매순간 지속적으로 뒤집어놓을 것이다. 어떻게 뒤집는지, 어떻게 바로잡는지는 사람마다 미묘한 방법 차이가 있지만, 그런 것들에 대해 사람들은 말해주지 않는다. 사고가 이리저리 튀지 않고, 기억한 것을 기억한 대로 남기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공시에 적합하지 않을까.


3.


어느 강사가 "여러분 이건 똑바로 안 봐서 틀리는 문젭니다. 주의력 문제에요." 하고 말한 것을 계기로 나는 다시 약을 먹기 시작했다. 공시에서 중요한 것은 TO의 운, 버릴 문제를 버리는 판단력, 안다고 생각한 문제의 아다르고 어다른 차이를 발견해서 틀리지 않는 주의력이다. 내 모든 수험기간을 통들어 TO는 풍년이었다. 그걸로 내 합격의 반은 운, 나머지의 반도 아는 문제만 나와 준 운의 덕이었다. 나로서는 마지막 쿼터인 주의력 부분이 항상 문제였는데 100점이라고 생각한 문제지의 최소 두 개는 옳고 틀린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틀렸다. 사람들은, 심지어 강사조차 상식적으로 '똑바로 보면' 이걸 해결할 수 있지 않겠냐고 하던데, adhd의 결핍은 상식적인 수준이 아닐 수 있다. 무엇보다 이 현상은 메타적일 수 있다.


주의력과 집중력이 문제풀이에 주는 영향을 나열하자면 이렇다.

1)  문제가 옳은 것을 묻는지 틀린 것을 묻는지 잘못 보고 틀림->틀린 것을 묻는 문제에 커다랗게 X 표시를 하면서 풀기 시작함.

2)  X 표시를 하고 푸는 문제의 첫 지문이 옳아서 그대로 골라버림.->커다랗게 X표시를 해 놓고 그걸 못 봄.

    (주의력 부족+핀포인트 집중력 과다시 이렇게 된다.) 어떤 표시를 했었는지 기억하지 못함(작업기억력)

3)  X 표시를 하고 푸는 문제의 첫 지문이 틀린데 '에이 이건 너무 뻔하게 틀리네' 하고 아래로 내려가 옳은 2번 지문을 체크함.->2번과 같은 이유.

4)  문제의 X표시 유무를 떠나 틀린 지문을 옳게, 옳은 지문을 틀리게 읽음.

5)  풀었던 문제 한 번 더 그대로 풂. 답 체크하고 나서 풀었던 문제임을 다시 떠올림.

6)  한과목 마킹 안 한 채로 못 푼 문제 초집중하다가 1초가 1분처럼 지나가서 타임아웃으로 과락하기->과집중이 열일했다.


4.


이걸 해결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너무 다를 거다. 내가 시도한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은 실패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나는 페니드를 먹고 있고(성인에게는 우선적으로 처방되지 않는 약이다), 페니드를 먹었을 때 한정으로 커피가 주의력을 잡아준다. 그래서 시험을 치는 매 아침 10시~11시 40분에 맞춰서, 9시 30분에 페니드를 커피랑 같이 공복 상태로 먹었다. 이렇게 하면 집중력이 올라가고 주의력도 같이 올라가서 두 능력의 균형이 맞았다. 약효가 돈다 싶으면 시험장 asmr을 틀어놓고 이동기 하프모의고사 강의 2개, 이태종 하프모의고사 강의 2개, 문동균 하프모의고사 2개나 모의고사 1개를 미리 준비해서 50분을 목표로 적어도 1시간 안쪽으로 풀었다(세 모의고사 모두 강의와 함께 문제를 올려주신다.) 몸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이것만 하고 쉬기도 했다. 약은 조금만 컨디션이 나빠도 두통, 토기운, 충동성 통제 약화, 우울, 불면같은 부작용을 발생시켰기 때문에 오후에는 달리기나 샤워로 컨디션을 재정비했다. 특히 페니드는 약효가 줄어드는 오후3시부터 극심한 우울을 일상적으로 야기해서, 이 타이밍에 맞춰서 샤워를 하고 당을 마구마구 섭취해줬다.


누군가는 메틸+카페인에 너무 극심한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지금은 코로나 시국이라 헬스장을 가는 게 여의치 않으며, 페니드가 아니라 콘서타나 메디키넷 같은(저는 같은 메틸계 약이라도 약효 자체가 전혀 다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제가 그렇기 때문에) 다른 약을 먹는 사람에게는 전략이 아예 달라져야 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합격할 수 있다' 식으로는 말하기가 어렵다.


*  시험장에서는 9시에 페니드 5mg하나 9시 반에 페니드5mg을 커피랑 같이 먹었다.

*  빈속 페니드도 빈속 카페인도 위에 나쁩니다. 저는 위궤양이 생겼고, 페니드 우울 타이밍에 섭취한 당 덕에 10kg이 더 쪄서... 비만이 되었어요.



5.


강사들은 말하곤 했다. 이거 말고도 길은 많다. 괜히 이거 안 된다고 죽거나 하지 마라.

하지만 다른 일을 도무지 해낼 수 없어서 이 길에 들어온 나는 그런 말을 들을수록 더 슬프고 힘들었다. 

어떤 강사는 공부가 힘들거든 어디 공장이나 노가다라도 하고 오라고 했다. 그래도 공부가 낫구나 싶을 거라고.

하지만 작년에 떨어지고서 간 공장에서 나는 내가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일도 재미있었다. 다만 일을 못해서 3일만에 잘리고 말았다.

돌아오는 길에 다른 청소 아르바이트를 넣었는데 그것도 바구니를 제자리에 놓지 못한다고 2주 만에 잘렸고, 다들 쉽다는 독서실 아르바이트도 눈이 나쁜 것 같다는 평가와 함께 일주일에 잘리고 말았다. 그러고서 어머니로부터 그냥 죽는 게 낫지 않겠냐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노량진에서 죽은 사람들을 떠올린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공무원으로서의 사명 같은 거창한 것은 가지고 있지 않다. 부정적 피드백으로 버무려진 김치 같은 나는 죽지 않고 살아나가는 것만도 버겁다.

같은 판단으로 수험생이 된 분들께 실례가 되지 않는 글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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