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ADHD를 꽤 늦게 발견했다. 사회생활을 늦게 시작한 편인데 그러고도 몇년이 지나서야 여러 좋은 운이 겹쳐져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 외에도 나에게는 주변 사람들과 다른 점이 많이 있었다. 그런 현상은 자랄수록 점점 더 심해졌다. 나와 비슷한 조건을 가진 사람은 참 찾기 어려울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좀 특이하고 이상한 애라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내가 주변 사람들과 좀 다른 조건을 가진 점이 원인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최근에는 가면증후군에 관심을 가지고 책을 읽고 있다. 관심을 둔 건 오래되었지만 오랜만에 다시 알아보게 되었다는게 좀더 정확하겠다. 어떤 집단에서 이방인이라고 느낄때, 가면증후군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 나네, 아주 나야, 완전 나잖아, 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과 많이 다른데다 ADHD까지 있어 눈치조차 없으니 동떨어질수밖에 없지않나 ㅎ
사실 지난 몇달간 새로운 취미에 빠져서 거의 정신을 못 차리고 지냈다. 생활리듬이 깨지고 건강이 망가졌다. 아 이렇게 살면 안될것 같은데...라고 하면서도 또 붙잡으면 시간이 휙 지나가곤 했다. 나는 평생 공부든, 일이든, 노는 것이든 아무튼 뭐를 이렇게 열심히 해본 적이 없어서 아직도 이런 내가 낯설다.
오늘 트위터에서 그런 말을 봤다. '본인이 안전하다고 느낄때에만 건강한 퇴행에 해당하는 행위를 할 수 있다'고. (여기서 건강한 퇴행이라는 것은 맥락상 뭔가 몰입해서 신나게 노는 걸 의미하는 것 같았다. 덕질이라든지...) 그걸 읽고 아, 그러니까 내가 이제야 좀 불안하지 않게 되었다는 뜻인가, 생각했다. 그러고보면 최근엔 모든 것이 좀 안정된 것 같았다. 회사도 당분간은 이직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가정도 편안하고, 아마 이번엔 진짜로 마지막이 될 듯한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ADHD 치료를 받으면서 운동까지 하니 몸도 건강해졌(었)고 생활리듬도 잡혀가는 듯 했다. 그래서 요즘 이렇게까지 노는 데 집중하는 자신이 당황스럽고 안타깝고 그랬는데... 어쩌면 그래서 마음놓고 놀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아마 나는 실제로 불안했던 모양이다. 성격검사에서 두번이나 불안이 두드러지게 높다는 결과를 받았지만 막상 '아 불안하다'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어서 결과지를 쳐다보며 늘 '아니 왜 자꾸 내가 불안하다고 하지? 나는 괜찮은데?' 싶었었다. 겉으로 보면 나는 대단히 태평한 성격으로 보이고, 실은 나도 내가 좀 경각심은 못 느끼는 편이지 않나...싶었는데. 그냥 항상 불안한 상태라서, 매순간 긴장한 상태로 어깨가 굳어 있고 쉽게 잠들지 못하고 툭하면 나쁜 방향으로 생각을 몰고가며 최악의 상황을 시뮬레이션하고 있는걸 의식하지도 못하고 그냥 다 원래 그런거 아닌가? 생각했나보다. 그래서 ADHD답게 온갖 취미와 관심사에 눈을 돌렸다가도 발가락만 담갔다가 쏙 빠져나오고 그랬나보다. 그런 '열정 없음'은 사실 내 오랜 컴플렉스 중 하나였는데.
나의 만성적인 불안감과는 반대로, 나는 사실 꽤 잘 지내고 있다. 회사도 잘 다니고, 베스트는 아니더라도 조금쯤 인정도 받고, 숫자는 적지만 좋은 친구들이 있고, ADHD를 발견하고 약도 이만하면 잘 맞는 편이고, 오래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은 취미도 찾았고, 조언을 듣고 고민하고 고쳐보려고 노력하고, 아무튼 잘 먹고 잘 산다. 위에 적었듯이, 오래된 불안감도 조금은 걷혔으니까 노는 데 집중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10년이 괜찮았던 것처럼, 앞으로의 10년도 꽤 괜찮을 것 같다. 그러니까 이렇게 불안하고 힘들었던 불쌍한 나ㅠㅠㅠㅠ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다. 그냥, 그래, 불안했구나, 이제 좀 덜 불안해서 노는데 집중할수도 있고 좋구나, 기특하고 훌륭하다, 잘했다, 생각하고 싶다. 너무 과한 억지 긍정도 별로라지만, 나의 마음은 점점 더 건강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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