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이 년
병원을 가고 약을 먹은 지도 이제 이 년이 다 되어갑니다. 살고 싶어서 병원을 찾고 좀 더 나아지고 싶어 약을 먹었는데 얼마 전까지는 이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습니다.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제 삶은 롤러코스터 같이 좋았다가도 불행해지고 지하 속을 걷는 기분이었으니까요.
생각해보니 저는 힘들때면 언제나 남에게 의지하고 바깥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만족감을 얻으려고 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알고보니 그건 그때 뿐이었습니다. 제 삶은 남이 어떻게 해줄 수가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사실 좀 남다른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성공, 부, 명예보다 저만의 길을 가고 싶어 나름의 일과 준비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 년 전, 저는 공무원을 준비하게 됩니다. 왜냐면 겁이 났거든요.
원하는 일을 하면 혼자는 행복할 수 있을 거 같아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힘들어지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두려움이 저를 노량진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노량진에서 의지를 불태워 보려 했지만 얼마 안 있어 여러 사건과 일들로 주저 앉게 되는 순간이 왔습니다. 그렇지만 쉽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공부도 할 수 없었습니다.
펜도 못 잡고 의자에 앉을 수도 없는데도 미련만 남은 채 명색만 공무원 준비생으로 지난 해를 살았습니다.
2. 전환점
처음엔 수 개월을 아무것도 못하고 지내다 파트타임이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일이 어렵고 고되었지만 생각보다 일이 잘 맞았습니다. 그 후에 가게 사정으로 풀타임으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어느 순간 이 일에 진지하게 임하는 저를 보게 됐습니다.
그렇게 반 년 정도를 일하다보니 어지러웠던 생활이 점점 정돈되어 간다는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그러다 공무원 시험 신청기간이 다가왔습니다. 사실 시험은 치려고 했습니다. 공부한 것도 없지만 시험을 치면 이전에 결제한 인강을 일 년 더 수강할 수 있어서인데 신청 기간 일 주일 동안 계속 미루다가 마지막 날 신청하는 것을 까먹고 밤 12시를 넘겼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험을 치려고 했던 것은 마지막까지 남은 미련이었고 미루고 미루다 까먹고 놓친 것은 놓친 게 아니라 제가 놓은 것이라고 의사선생님이 말해주더군요.
이제 시험도 못 치고 인강 수강 자격도 상실됐다고 하니 아쉬움보다는 속이 후련했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앞이 환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당장 걸어야 할 몇 발자국씩은 보이는 거 같습니다.
남들따라, 남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저 자신을 위해 일하고 살아간다는 기분이 저를 살게 했습니다.
저는 그걸로 만족합니다. 이전까지 길을 잃고 헤맸던 날을 지나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몰라도 당장 가야할 방향을 알게 되어서 기쁩니다.
언제나 그렇듯 불행은 제 곁으로 다가올 거지만 그 불행이 저를 덮치지 않게 열심히 살아보려 합니다.
더이상 불행하지 않기 위해서요.
나를 위해서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