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중요한 기한을 못지켜서 여러번 낭패를 봤다. 내가 adhd핑계를 대는것 아닐까 실은 우울증인데 그것때문에 집중을 못하는것 아닐까 고민했는데 실은 실수로 인해 그르친 입시부터 내 우울이 엄청 심해졌기 때문이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수시원서를 부모님 싸인받아 학교에 제출해야하는 날 책상위에 놓고와서 결국 가려던 곳이 아닌 다른 원서를 제출했다. 결과는 떨어졌다.
수능날 교실에 앉아보니 아뿔사 손목시계를 어디에 흘려버렸다 수능 마치고나니 방송해주더라 주웠으니 찾아가라고.. 그래도 수능이 쉬워서 다행이었다. 남들처럼 대박나진 않았지만 긴장한것치고는 잘나왔다.
수능후 원서상담하고 쓰는데 가장 점수대 맞았던 상중하 중 중급 원서가.. 다른학교들이 오후6시 마감이라 거기도 6시로 기억마감인줄 알았는데 아뿔사 들어가보니 이미 마감. 오후 1시였다.
그리하여 나군광탈 가군못씀 다군으로 갔다. 점수는 남아도는학교였고 나는 학교가 맘에 들지 않아 편입에 도전했다.. 이때 이미 우울이 심했지만 억지로 공부는 꾸역꾸역했다 편입 시험 보는 학교가 실은 내 수능점수로는 너끈히 들어갔어야하는 곳이라 짜증났지만 그래도 일단 필기시험 봄.. 근데 내 썩을 정신머리가 또 일을 그르침. 맞다... 필기합격발표... 불안한 마음에 부랴부랴 확인하면서 내심 불합격이었기를 바라는 아이러니한 심정을 누가알까. 그리고 정말 좌절스러웠다. 필기가 합격이었고 이미 면접날짜가 지나있었다...
내스스로 너무 한심해서 차마 이걸 누구한테 말햔수도 없었다 부모님한테는 그냥 떨어졌다고했다
이러고 다니던학교를 졸업했지만 학교생활은 제대로 될리 만무했다. 좌절감때문인지 맨날 정신이 빠진듯 과제도 겨우겨우. 전필 중에 후배들하고 같이 듣는 수업에 팀 과제로 내 몫을 암기해서 발표해야하는 과제가 매주있는 수업이 있었다. 그 수업에 한번도 완벽히 암기를 마치고 갈수가 없었다. 수업마다 후배들의 눈총 교수님 지적을 받고 나왔다. 교수님은 내가 내가 편입실패하고 학교가 맘에 안들어서 일부러 게으르게 수업을 듣는줄 아셨다. 정말 그게 아니었는데.
강의실을 나온 순간부터 그 다음주 또 그 수업에 들어갈때까지 그 수업과제만 생각했는데 그래도 거의 매번 그 수업전날 밤을 샜지만 늘 제대로 외우는데에 실패했다. 두시간 짜리 수업이었는데 중간 쉬는시간 10분동안 화장실로 달려가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것도 못하는 내가 너무 한심해서. 내가 병?.신이 된것같았다.
3학년 전필 시험날엔 늦잠을 자느라 시험을 놓치기까지 했다 일부러 시험을 포기한게 아니었는데. 시험 당일 늦잠자서 시간을 놓치다니. 어쩌다 내 상태가 이렇게 됬지. 이때 좌절감이 너무 심했고 매일 밤이면 좌절하고 나를 저주하고 그러다 질질짰던 기억이 난다. 아마 우울증이 맥스를 찍었던것같다.
취준을 시작했다. 이미 내게 문제가 있다는걸 어느정도 알았다. 이대로는 취업준비를 제대로 못할것같아 부모님께 말하고 중앙대병원에 갔다. Cat검사도 심리검사도 했는데 처음 스트라테라 2주치를 받아먹고 검사결과를 들으러 다시 외래에 갔더니.. 교수님이 대뜸 입원을 하라고하셨다. 아니, 병인지 아닌지 알고싶어 간것인데 정신병원 입원이라니! 당장 면접준비해야하는데.
돌아오는 주말에 서류통과한 공기업 필기시험과 항공사 면접이 있었다. 근데 입원이라니! 여기서 부모님도 나도 일단 멈췄다. 돌아오는길에 부모님이 내게 없던일로 하는거다, 잊자라고 하셨고 나는 동의했다. 근데 이걸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했다. 차라리 그때 뭐가됬든 치료를 했어야 했다. 더 우수운건. 필기시험은 책만 사고 몇장 보지도 못하고 걱정만 하다가 시험장에 들어갔다. 광탈. 항공사 면접은 용케 1차를 통과했는데 이런. 당일 오후 2차 집단면접에서 아뿔싸, 핸드폰이 울렸다. 꺼놓는걸 깜빡한 내 정신머리가 또 일을 그르쳤다. 우리조 전원이 탈락했다.
그리고 들어간 회사가 하필이면 출판사일게 뭔가.. 오탈자 잡아내기는 내게 쥐약이었다. 시간은 남들 두배를 들이는데 일일업무기록지상으로는해놓은게 없었다.. 잡은게 없으니... 도무지 나는 오타가 보이지가 않아서 진도가 안나갔다. 또 이미지와 참조 자료를 찾아야해서 서핑을 해야하는 일이었기에 나는 늘 인터넷의 홍수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마감을 못했다. 보통 작가나 검수자가 마감기한을 놓치지 않도록 내가 스케줄관리를 쪼아야하는데 미칠노릇이었다...
늘 야근은 하는데 다른 직원들보기에는 일중독처럼보이겠는데 어쨋든 출판스케줄이 있으니 야근에 주말출근에 퇴근때 맨날 일도 싸갖고 갈 지경이었다 하지만 결과물은 실수투성이. 오죽하면 내 이름이 박히는 첫 대형 프로젝트에서 앞표지다음으로 중요한 뒷표지에 커다랗게 너무나 잘보이는 실수를 남긴채 인쇄를 넘겼고 나는 그걸 뒤늦게확인하고 짤릴걸 직감했다 . 뭐라 변명의 여지가 없는 대형실수.. 아니 어떻게 그걸 못볼수가 있지? 뒷표지인데..
나는 이때부터 온갖 일을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광고교육원에 실무교육이 붙어서 다녀봤는데 프레젠테이션할때 긴장해서인지 또다시 눈을 깜박거리는 틱증상이 심해져서 지적을 자꾸 받으니 스트레스받았다 . Ae는 소통이 중요한데 흔히말하는 인싸감성이 아니고 설득도 잘 못하고 아무래도 내 일은 아닌것같았다
다음으로는 코딩도 배워봤다 반장을 했고 수업은 열심히 들었다 교육수료할때 표창도받았다 헌데..취업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했는데.. 내가 pm이었는데 팀원들과 트러블이 생겨 혼자 하다보니 역시 완성을 못하고 흐지부지하다가 포기해버렸다.
그다음은 보험영업을 배웠고 카드도 팔아봤다. 역시 교육기간 첫 두달은 실적이 좋았다. 1등도 한번 찍었다 헌데. 너무 몰아서했는지 3달째부터 실적이 뚝뚝 떨어졌다. 처음부터 인맥도 별로없었던 내가 오래 버티기 힘들었다.
아 나는 회사다니면서 일할 팔자가 아닌가보다, 암울해서 집에 틀어박혀 백수생활을 했다. 우울이 심해지기만 해서 나이만 먹다가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일단 몸쓰는 일을 하기로 했다. 김밥써는일이었는데 5060 아줌마들이 주로 하는 험한일이었다. 몸은고됬지만 일은 쉬웠다. 그냥 단순 반복의 연속이니까. 하지만 2년이 흐르니 일이 익숙해진만큼 내가 기가세진걸까. 아줌마들과 트러블이 생겼다. 텃세가 심했는데 싸우기도 싫었다 아 여기서 이렇게 살면서 인생을 더 낭비할수없어.
다시 때려치고 나와보니 나이가 어느새 서른이 훌쩍 넘어버렸다. 나는 경력도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시간만 흘리고 뭐하나 만족스럽지않고 머리만 복잡했다. 방은 옷과 물건, 미완으로 그친 모든 도전이 남긴 물건들로 터져나갈것 같은데 뭘 버릴지 손댈 엄두도 안나고 그냥 그런것을해야지, 생각하는 것 자체가 머리아팠다.
다시 병원에 갔다. 이번엔 삼성병원. 25살때 검사지 갖다주고 다시 살아온 이력을 실패한 기록들을 좍 읊어주면서 다시 즙을짰다. 또 입원권유를 받았다. 이젠 엄마도 동의해서 예약자명단에 올려놨다. 근데 하필 비었다고 입원하라는 날짜가 크리스마스시즌이었다. 개방병동은 자리가 안났고 폐쇄병동이랬다..
아. 크리스마스에 짐싸서 들어가기는 너무싫었다. 나는 다시 한발 물러나 차라리 동네 의원에 다니면서 약을 먹겠다고 했다. Cat 검사를 또 했다. 신기하게도 25살때랑 변한게 없이 항목별 점수까지 비슷했다. 콘서타와 메디키넷 에스시탈로프람 월부트린 같은 약들을 먹기시작했다. 그리고 인지치료센터에서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인지치료도 해봤다. 그런데 큰맘먹고 처음엔 잘다니던 병원도 센터도 두달 쯤 다니다가 흐지부지해버렸다. 알바 시작했다는 핑계로. 하지만 역시 일은 오래다니지 못했고 두달 텀으로 철새처럼 옮겨다녔다. 야간일이라 수면패턴이 흐트러졌고 약은 떨어진지 오래. 갈 돈도 사실 없어서 맨날 미루다가 병원에 발길을 끊고 이렇게 또 몇년이 흘렀다. 30만원짜리 고시텔로 독립을 하고 이러저러한 알바를 다니면서 돈을 조금 모았다. 그리고 천운으로 내 도박성향이 빛을 발해서 코로나의 해, 주식대박과 소소한 코인성공으로 당분간은 먹고살 생활비는 생겼다.
코인하느라 밤을새고 또 코로나로 알바감도 끊겨 쉬다가 맨날 폐인처럼 틀어박혀 사는 날이 이어졌다. 눈뜨면 누운채 폰 좀보다 지치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짐승의 삶이었다. 어쩌다 이리됬나. 싶었다. 고등학생때까진 나름 공부도 잘했는데. 수능도 2프로3프로정도 나왔었다. 크게 성공은 못해도 이나이때까지 서빙이나 물류센터다니고 먹고살줄은 몰랐다. 이젠 나이가 많아서 더이상 젊지도 않은데. 계속 알바로 뜨내기처럼 겨우겨우 생활비만 벌어사는건 한계가 있다. 이렇게 계속살면 고독사겠지.
코인을 다 뺐다. 거지같이 쌓였던 옷들도 자질구래한 짐들도 무작정 쓰레기봉투 대형사서 다 집어쳐넣어서 버렸다. 벌금내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그리고 제일가까운 신경정신과에 가서 치료를 다시 시작했다. 이젠 취업에 욕심도 크게 안부린다. 그냥 내 마음이 편하고 내가 하고픈게 생기고 만족할만큼 노력만하면 좋겠다. 포기하지 않고. 머리 복잡하게 허둥대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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