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는 장애가 맞다 컨스털레이션 조회수 385 2024-04-11 21:00:01 |
Disorder라고 불리는 데엔 이유가 있다.
시력이 나쁜 사람을 보고 노력이 부족했다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렇다고 시력 나쁘면 죽나? 아니다, 맞는 안경을 찾으면 된다. 그리고 안경을 쓰는 건 부끄러울 일이 아니다. 이건 인생을 누리고자 쓰는 거다. 물론 맞는 안경을 찾기 어려울 수도, 안경을 써도 부족할 수도 있다.
ADHD도 마찬가지다. 신경전달물질의 문제로 생기는 불이익은 생활에 있어 분명한 문제로 나타난다. 그렇다고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는 없는 거다. 관리와 치료를 통해 개선할 수 있고, 그런 과학의 발달로 충분히 ‘일반적인 삶’을 목표할 수 있다. 물론 사람마다 그 효과와 정도는 다르다.
그러나 (그렇게 분명함에도) 질병과 같이 사는 데에 있어서 논리와 이성보다는 넓은 마음을 갖는 게 필요할 때가 있다.
중요한 건 그런 역린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럴 리 없다, 나는 눈이 나쁜 게 아니다‘라는 속임수는 언제까지나 의지에 대한 호소다. 되도 않는 채찍질은 제 살 파먹기다. 그렇게 내가 싫어도 그런 나를 그대로 받아드릴 수 있어야 한다. 또는, 그런 의지가 필요하다.
게으르고 눈치없는 나, 주의를 고정하는 데에 애먹는 나, 오늘도 지각한 나, 그런 ’덜렁이 나‘가 있다. 쉽게 고쳐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내가 싫다.
저게 제일 어렵다. 주변에서도 인정하지 못하는 나를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그건 나의 태도다. 내가 나를 좋아해주는 게 제일 어렵다. 흉한 나를 어떻게 좋아할 수 있는가? 나를 어떻게 사랑하는가?
그럼에도, 나는 분명 좋은 게 있다. 그 좋은 것 덕분에 나는 내 아픔을 안타까워 했는 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여기까지 왔다.
그러면 됐다. 딱히 완벽할 필요도, 완벽을 쫒아갈 이유도 없다. 내가 좋았다고 인정한다면 살 만한 삶인 거다. 어떤 식으로든 어려운 게 삶의 평범이다.
장애와의 삶, 그건 뭐같은 건 맞다. 농담으로 “하드 모드”의 삶일 지도 모른다. 모든 것에 거리감이 따른다. 그럼에도 그 차이를 좁히는 노력이 삶의 일부인 거다.
부족한 자신을 바라보고 안타까워하는 것도 능력이다. 물론 마음가짐을 바꾼다고 변신이 일어나진 않는다. 단지 그런 나를 외면하거나 기죽일 필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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