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처음이라. 셜븐 조회수 86 2021-05-21 00:57:15 |
맹자가 말하기를, 태산을 끼고 북해를 뛰어 넘나드는 것을 남들에게 "나는 못한다." 한다면 이것은 정말로 하지 못하는 것이나, 어른을 위해 나뭇가지를 꺾는 일을 남들에게 "나는 못한다." 한다면 이것은, 하지 않는 것이지,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不爲也, 非不能也.)
- 《맹자》 , 양혜왕 상(梁惠王 上) 중에서
1. 요즘은 모든 것이 새롭다. 백수가 된 김에 미루고 미뤄왔던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운전학원을 등록한 것이 하나이며, 다른 하나는 나의 모든 것을 바꾸기 위해 눈이 크게 떠질 만한 돈을 들여 1:1 PT 3개월을 등록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서두에 적어 둔 이 구절을 '잊은' 적은 없다. 나는 이 구절을 참 좋아한다. 지금은 주연배우의 범죄 때문에 언급조차 꺼리는 어느 드라마를 내 인생 드라마로 생각한다. 한국 사극의 마지막 불꽃이라 생각하며, 그만큼 완성도가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내가 이 드라마에 꽃힌 계기는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말을 들은 것이었다. 나는 이 구절을 되뇌이면서 지난 날을 후회했고, 마침내 나는 싸울 기회가 주어졌지만 너무나 쉽게 포기했다.
2. 나는 '잊고 있지만' 않았었지, 마치 과거의 경험이 학습된 듯 현실과 마주하면 도망치기 바빴던 것이었다. '분명히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벼랑 끝이라 포기하지 않을 줄 았았는데.' 하는 사이에 나는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폐인이 되었다. 세상 모든 일이 싫었다. 싫었다기 보다는 의미가 없어서 신경질 날 지경이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숨만 쉬고 있던 중, 국가장학금이 환급되어서 예상 외의 큰 돈이 들어왔다. 이 돈을 헛되이 쓰고 싶지 않았다. 나는 무엇에 홀린 듯,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월요일이 되자 마자 운전학원을 등록하고, PT를 등록했다. 누가 봐도 미친 짓이었다. 통장을 보니 그 큰 금액이 나의 통장에 들어갔다 다시 나왔다. 이제는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분명 이것은 옳은 선택이리라 스스로를 위로했다.
3. PT를 등록하면서, 나를 담당할 선생님께 나 나름의 의지를 설파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답하셨다. 다만, 식단 조절도 하고 운동도 생각보다 많이 힘들 것이라 하셨다. 나는 모든 것을 감내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운동과 식단 조절을 시작했다. 식단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으로 줄였다. 전문적으로 보디빌딩을 하는 사람들이 먹는 식단과 비슷하다고 했다. 생각 외로 먹을 만 하다는 것에 나는 놀랐지만, 기존의 쾌락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아쉬운대로 먹었다. 첫 수업을 시작했지만, 선생님의 실수로 스트레칭을 생략하는 바람에 장딴지가 미칠 듯이 아팠다. 나는 후회했다. 괜히 하자고 한 것인가. 어찌저찌 넘겼지만, 다음날 일어나자 마자 허벅지가 고통스러웠다. 고통은 닷새 동안 있었고 나는 지옥을 경험했다.
4. 허벅지가 아픈 몸을 이끌고 학원에 가 학과강의를 듣고 옆 지역에 있는 운전면허시험장에 가서 필기시험을 쳤다. 여기까지는 나름 순조로웠고, 다행히 한번 만에 합격했다. 나는 자신감을 얻었다. 하지만, 다음 날에 잡힌 장내주행연수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남자는 1종!"이란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당연하듯이 1종을 선택했고, 이 선택이 스스로 발목을 잡은 꼴이 됐다. 부족한 주의력과 불편한 다리로 인해 4시간의 연수시간을 허공에 날렸다. 멘탈이 박살난 나는 사무실에 가 2종으로 변경해달라 했다. 집에 갔더니 "면허를 먼저 따던지, 운동을 하던지!"란 말을 들었다. 나는 3개월 안에만 따면 된다고, 조금 천천히 따면 된다 항변했지만, "미친새끼."란 대답만 돌아왔다. 나는 속에서 울화가 치미는 느낌이 들었다.
5. 나는 원망스러웠다. 이런 운동도 감당 못하는 내가, 주행연습도 감당 못하는 내가 막연하게 원망스러웠다. 허벅지의 고통까지 더해져 정말로 괴로웠다. 선생님과 수업하지 않는 날에도 운동을 하기로 약속했는데 몸이 아파 가지 못하는 것도 원망스러웠다. 원망스러운 와중에 위의 구절이 떠올랐다. '내가 하지 않는 것인가, 하지 못하는 것인가?' 이제서야 이 짧은 글에 담긴 참뜻을 알아냈다. 머릿 속으론 수만 번을 외웠지만 어느 때보다 마음에 와닿았다. 이제는 '할 것'이라 속으로 다짐했고, 다행히도 한 주를 넘기기 전에 통증이 가셨다. 운동은 '하지 않는 것'을 체득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후로 나는 후회를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후회를 '내 발목을 잡는 경멸스러운 감정'이라 취급하기 보다는 흐름에 몸을 맡기게 됐다.
6. PT는 받는 날마다 고통스럽다. 선생님에 대한 원망이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 나는 한 걸음씩 앞으로 발을 내딛는 스스로의 모습을 봤다. 이것이 나를 운동하게 만드는 전부다. 정해진 식단을 규칙적으로 먹는 것, 나아가 운동을 하고 스스로를 극복하는 것. 나는 지금 꿈을 꾸는 느낌이다. 이제껏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하지 못했던, 아니 하지 않았던 것이기 때문에. 나는 아직 두렵다. '언제고 포기할 수 있는 게 나다.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잖아?' 그런 내 마음에 지긋이 이 말을 전해준다. '不爲也, 非不能也.' (불위야, 비불능야./하지 않는 것이지,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힘을 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만 글을 줄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