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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져 내릴 것 같아서
Level 3   조회수 417
2021-11-28 02:43:56

ADHD 진단을 받은지 2주가 지나간다. 


근 몇달간 내가 생각해도 일에 도통 집중하지 못하고 실수연발, 혼나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내가 왜 이러는 걸까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라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점점 심해지는 공황장애로 고객에게 걸려오는 간단한 예약전화조차도 크게 심호흡 여러차례 하면서 이어나가고 


고객 한명을 응대하는 순간 순간이 300명 앞에서 프레젠테이션하는 것마냥 떨려왔다. 


스스로도 이상함을 느끼다 직장 상사로부터 ADHD 아니냐는 농담을 들었을 때, 나는 아차 싶었다. 


혹시 내가? 정말? 


살아온 나날을 되짚어보니 나는 ADHD와 닮아 있었고 검사 결과 ADHD였다. 


지각, 3개월 단위로 바뀌는 관심사, 관심 가지는 것마다 내 인생을 바치겠노라 다짐하지만 이내 잃는 흥미, 항상 잃어버리는 지갑과 우산, 


충동조절로 인한 이성문제 금전문제 알코올중독 우울증과 두차례 생을 끝내려 했던 시도까지


문제 투성이인 나는 항상 교양있는 취미와 관심사, 얕고 넓게 섭렵한 지식과 거짓말, 격조있는 어투로 그럴 듯한 사람으로 포장해왔고 나 스스로도 그렇다고 믿고 살아왔다.


정신과 진료를 받은지 5년이 되어가는 지금, 선생님에게 조차 말하기 두려웠던 내 과거행적을 털어놓으니 조울증도 함께 진단받았다.


내가 정말 이상했던 때가 있었다는 걸 스스로도 알면서 계속 외면해왔었다. 


병을 진단받고 한동안은 항상 힘든 것 같다. 


성인이 되서 갑자기 발병했던 알레르기 천식. 


먼지가 나지 않는 240수 포플린 면으로 방안을 온통 도배한 나만의 무균실을 만들고 인조섬유, 가죽, 플라스틱, 비닐, 나무, 먼지, 꽃가루는 물론


밀 감자 계란 파 닭 정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식품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까지


내게 일상이란 단어는 사라졌었고 환청과 알레르기성 기도협착에 기인한 편집증적인 행동을 보이며 미쳐가고 있었다.


나중에는 실제로 증상이 있는 것인지 내 머리가 만들어낸 환상인지 조차 헷갈렸다.


수입차 한 대 정도의 값을 쏟아낸 다음에야 회복된 건강을 기다리고 있는 건 투병 생활동안 망가질대로 망가진 내 마음이었다. 


공황장애에 시달려오며 악화된 ADHD증상과 조울증상이 나 스스로 느끼기에도 문제를 자각할 만큼 심해져버렸다. 


감정이 요동치는 요즘 퇴근길 160km로 내달리면서 목숨을 내던지듯 운전을 하고 일과 중에도 알 수 없는 감정이 몰려와 눈물을 쏟아내고 있다. 


아무 것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답답함때문인지 면도날을 손에 쥐고 지근지근 자상을 입히며 휘몰아치는 쾌감과 흥분에 맘을 뺏기기도 했다. 


깨진 와인잔을 보며 손목에 가져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끓어오르는 내 모습에 도대체 어쩌다 이런 지경이 된 것인지.  

 

팔뚝과 손목의 상처를 볼때마다 눈물이 맺히는건 내게 아픈 나날들이 계속되는 게 억울해서, 분해서, 이대로 있다간 무너져 내릴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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