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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내 책임은 아닌 일들에 관하여
Level 8   조회수 313
2022-02-16 21:15:04


엄마는 국민학교를 좀 다니다 말았다. 딸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던 할머니는 ‘둘째는 똑똑하니까 눈칫밥은 안 먹겠지’라며 자매 중 가장 똑똑했던 둘째딸을 식모 노릇을 하도록 남의 집에 보냈고, 둘째딸은 ‘공순이’가 되어 서른까지 가족에게 월급을 보내다 결혼해 평생 다양한 비정규직을 전전했다. 

아빠는 검정고시로 고졸 자격을 얻었다. 의심스러운 소수파 종교에 심취한 할아버지는 힘겹게 가족을 부양하던 아내를 잃은 후, 세속적인 공부는 필요없다며 아들이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했고, 중학교만 겨우 졸업한 장남은 어깨너머 기술을 배워가며 동생만은 어떻게든 고등학교를 졸업시키고 평생 다양한 비정규직과 영세사업을 오갔다. 

학교에서 가정환경 조사 따위를 적어서 내라고 하면, 엄마는 항상 ‘그냥 엄마아빠 다 고졸이고 아빠는 회사원’이라고 적어 내라고 했다.


판잣집이 철거되며 얻은 분양권을 팔지 않는데 성공하고, 융자를 얻어 잔금을 치른 아파트를 전세를 주고 온수가 없고 푸세식 화장실이 있는 단칸방에 살았다. 집에는 책을 구비할 돈도 공간도 없었다. 옷과 책은 대부분 물려받고 물려줬다. 다행히 가족은 모두 덩치가 작았고, 아무도 큰 병에 걸리지 않았다.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있는 주공아파트로 이사하고 작지만 잘 갖춘 도서실이 있는 학교에 다니게 된 후, 아이들은 책을 아주 많이 읽었다. 학원은 따로 다니지 않았지만 성적이 좋았고 점점 더 멀리 떨어진 학교로 진학했다. 


부부는 최선을 다했다. 불안정한 경제적 토대 위에서 형편이 되는대로 사립대 학비를 마련해주고,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유예하고 공부할 수 있게 도와준 정도였지만, 그들이 가진 온 힘을 다한 최선이었다. 


눈에 띄게 똑똑하고 유달리 부산스럽던 맏이는 재수를 해 사립대에 갔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한번에 국공립대를 갔으면 참 좋았을텐데, 그나마 문과라서 다행이었다. 착실하게 열심히 공부한 동생이 대학을 졸업해 취직을 하고 밤을 새 가며 일하게 되고 난 후에야 겨우 자리를 잡았다. 동생처럼 성실하게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더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었을텐데, 시간이 지날수록 부모는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으로 걱정이 늘어갔지만 맏이는 마냥 태평해 보이기만 했다. 


그의 내면에 어떤 불안이 도사리고 마음을 좀먹고 있었는지, 얼마나 매몰차고 날카롭게 자신을 미워하고 있었는지, 가만히 앉아있기 어렵고 잠들기 어려운 날들이 이어져가고 있었는지, 어쩌면 인생 최대일지도 모르는 성취 앞에 그저 ‘다행이다’라고 안도했을 뿐이라든지 하는 사정은 자신을 포함한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맏이는 삼십대 후반에 자신의 ADHD를 알게 되었다. 



엄마아빠가 가난한 집안에서 어렵게 자라 평생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았던 것, 그래서 많은 돈을 벌지 못하고, 자산을 모으지 못하고, 자식들에게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하고, 물려주지 못하고, 이런 것들은 딱히 내 책임은 아닌 일들이다. 딱히 그들의 책임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세상에는 그런 일들이 많다. 딱히 내 책임은 아니지만 아무튼 내게 주어진 조건들.

뒤늦게 발견된 ADHD, 자신도 모른채 키워온 불안, 내 손으로 갚아나가야 했던 학자금대출과 보증금, 책에서도 본 적 없는 것 같은데 나만 빼고 다들 익숙한 것 같아 보였던 고급 문화와 어려운 교양, 몇 다리 건너도 찾아볼 수 없는 유용한 인맥 같은 것들. 


내 책임은 아니다.

내가 원한 것이 아니다.

굳이 뭔가 원망을 한다면 세상이 이렇게 생긴 점이 나빴다.

내가 잘못한 건 없지만 그래도 내가 할수 있는 것을 하고 산다.

여전히 종종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나쁜 습관과 싸우고, 지고, 자책하고, 그러면서.

달리 어찌할 없으니까, 할수 있는 것을, 할수 있는 만큼.



에필로그.
아이들이 모두 취직을 한 후, 엄마는 검정고시로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취득하고 방송대에 진학해 학사학위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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