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ADHD 서울대학교 학생의 ADHD를 위한 공부법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라고는 하지만 거창하고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대학 입학 후 3년 동안 거의 놀다가 이번 학기 들어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학과 특성상 올해부터 진짜 중요하거든요...
그동안 머리가 굳음 + 공부습관 다 사라짐 + 애초에 ADHD 모르던 중고딩 시절의 공부 습관이 많이 잘못되어 있었음 + 남들보다 모자라기에 누구보다 더 고민하고 성찰하며 자신만의 학습 전략을 개발해야 하는 ADHD의 특성 + 내 경험과 전략을 남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자그마한 야심(ㅎㅎ)을 위해서 ADHD를 위한 공부법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공부하기 싫을 때마다 블로그 쓴다는 핑계로 열심히 적겠습니다 ㅎㅎ
ADHD를 위한 공부법 1 소위 말해 정상적이고 평범한 두뇌 시냅스와 전두엽을 가진 분들은 우리의 고충을 잘 이해하지 못하십니다. 문장 단위로 이해하지 못해 간단한 기사도 두 번 세 번 읽어야 하고 정보의 구조화에 취약해 많은 정보가 한 번에 유입되면 머리가 백지 상태가 되어 멍해버리고 공부하다가 조금만 스트레스 받아도 불안 무기력증이 재발하고 설령 2시간 3시간 앉아서 열심히 필기하고 읽고 문제 풀고 있어도 공부와 상관없는 생각들이 빙빙 돈다는 기분을 말입니다.
보통 사람들보다 일처리 능력도 이해력도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시험기간이 되면, ppt가 100장은 되는 전공 과목 수업을 듣는다 치면 미쳐버릴 것 같습니다. 제가 방금 그랬거든요. 두 시간 동안 열심히 조직학 첫 수업을 들었습니다. 초반 30분까지는 그럭저럭 이해할 만 했는데 어느 순간 모르는 용어들, 처음 보는 그림들이 막막 튀어나옵니다. 수업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관심 없는 유튜브 영상 틀어두고 멍때리는 것 같습니다. 조직학 수업 전에 화학 수업 때 암기할 양도 벅차 죽겠는데 생판 이해도 못한 피피티를 주말동안 100페이지 가까이 공부할 생각에 한숨만 나옵니다. 수업 끝난 직후 제 의지는 더 이상 통제 가능한 영역이 아닙니다. 비대면 수업을 듣던 테이블 위에서 혼밥을 하면서 유튜브를 봐도 머릿속에 들어오는 건 없습니다. 오늘도 여김 없이 찾아왔습니다. '브레인 포그!' (공식적인 의학 용어는 아니지만 이만큼 잘 표현하는 용어도 없는 것 같습니다)
벗어나기 자기 비하적인 생각과 불안감에 빠져 한 시간 가량 집 안에만 있다가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근처 헬스장에 가 이두근과 삼두근을 조져(!)줍니다. 우울과 불안은 최고의 운동 부스터입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덤벨 킥백 중량이 세트마다 급격하게 올라가는 지 모르겠습니다. 무거운 덤벨로 몸을 지치게 하니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들이 어느새 사라졌습니다. 근처 편의점에서 오랜만에 담배에 라이터 구매해서 두 개피 피우고 집에서 단백질 식단도 챙겨 먹은 뒤 근처 도서관으로 걸어갑니다. 집에서는 도저히 공부할 엄두가 안 납니다. 전 공부하는 장소가 계속 바뀝니다. 2일간 집안에서 공부 잘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공부가 안되면 그걸로 끝입니다. 방 안 책상과 공부를 아예 분리시켜 놓아야 합니다. 의지를 이기려고 하면 안돼요. 도저히 공부를 못할 것 같으면 바로 그 자리를 벗어납니다. 달리기나 헬스처럼 머리의 잡생각을 떨쳐낼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해봅니다. 그렇게 2-3시간 지나면 다시 공부할 마음도 생기고, 무엇보다도 헛되이 보냈을 시간을 어떻게든 의미 있게 보냈으니 생산성 없이 책상 앞에 있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작은 단위로 나누기
다른 방법은 해야 할 일들을 아주 작은 단위로 나누는 것이다. 글을 쓸 때조차도, 나는 스스로 '나는 한 장을 오늘 꼭 다 써야겠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나는 더 성취 가능한작은 목표들을 세운다. 만약 내가 한 자리에서 몇 단락을 잘 써냈다면, 나는 그만하다면 됐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 이상을 기대했다면 단지 실망하고 좌절감을 느낄 뿐이니까. 다시 강조하지만, 좌절감을 방지하는 것이 창의적이 되는 길에 있어 핵심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는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대학 교수가 된 ADHD 소년, 리틀 몬스터 (Robert Jergen 저) 중 -
도서관 열람실 책상에 앉아있습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공부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합니다. 내일의 계획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설령 세워도 쉽게 까먹는 우리입니다. 이 자리에서 화학 수업 내용만 공부할 것을 다짐합니다. 화학 수업 내용 중에서도 아미노산의 r기 종류 20개 외우기만 목표합니다. 20개 중에서도 비극성인 9개만 먼저 암기할 것을 계획합니다. 이 많은 양을 언제 다해야 할지라는 부담감에 휩싸일 바에야 차라리 그 중 일부만 공부합니다. 그 일부도 더 작은 단위로 나누어 버립니다. 가능한 목표들을 세워 해낸 뒤에 더 공부할 지, 아니면 오늘은 그냥 여기까지만 하기로 타협할 지는 그때 생각합니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할 바에야 최대한 단순하게 생각하는 게 낫다는 걸 20년 넘는 시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생각조차도 오늘 블로그에 쓰지 않았다면 공부하면서 또 까먹었을 나입니다. 까먹지 않게 메모장에 꼼꼼히 계획을 필기하고 '작은 단위로 나누자!!' 아래에 적어둡니다.
공부는 누구나 하기 싫습니다. ADHD에게는 말할 필요도 없이 더한 고역입니다. 심지어 전 서울대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힘들겠어요?? 블로그 글 덕분에 제가 더 큰 동기와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이제 유튜브 딱 하나만 더 보고 공부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파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