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타 18mg 1주치 먹고, 36mg으로 투약 3일차인, adhd 새내기예요.
처음 콘서타를 먹었을 때는 경이로웠습니다. 내가 공부를 앉은 자리에서 적절한 휴식을 취해가며 10시간 이상을 지속할 수 있었다니. 심지어 그 10시간동안의 공부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보통 중간중간 저를 방해하는 요소들이 저로 하여금 공부를 지속할 수 없게 항상 만들었었거든요. 아니, 성인이 된 이후로 공부를 10시간 이상 해본게 처음이였어요. 예를 들면 하다가 막힌다던지, 갑자기 게임 커뮤니티에 들어가고싶다는 충동, 쓸데없이 카톡 확인하다가 다른 곳으로 샌다던지 등의 행동을 한번 하고 나면 아 역시 오늘 공부는 미루고 피시방이나 가야지~ 날씨가 좋은데 한강 나들이나 가야지~ 하면서 공부를 지속할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5일차, 저는 이 집중력이 모든 것에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게임도 더 집중해서 할 수 있게 해줬고, 친구를 만날때도 더 집중해서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예요. 제가 바라는 이상적인 저의 모습은, 해야 할 일들을 제때 하면서 (주로 공부) 미리미리 해치우는 사람이였는데. 이 콘서타의 집중력은 꼭 공부로만 가는게 아니라, 다양한 딴짓들을 하는데 사용되었어요. ㅋㅋㅋㅋ 결국, 내가 공부를 하고 싶고 그게 나에게 필요하다는 확신이 주어진다면, 그리고 공부를 시작한다면 그때부터 공부를 지속하는건 큰 어려움이 없지만 지금 공부가 내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이게 꼭 필요한지? 에 대한 명확한 목표가 없으면 그냥 예전처럼 똑같이 미뤄버리고 더 열심히, 집중해서 노는 것 같더라구요.
어쩌면 1~4일차의 제게 일어난 변화가 너무나도 커서, 마치 콘서타를 만능약물처럼 생각했던 것 같아요. 갑자기 사람이 엄청 성실해지고, 생산적이 되고, 남들에 기대에도 부응하면서 나 자신도 만족하는 삶을 살게 방향까지 제시해주는 만능 약물! 하지만, 5~7일차에 방향이 틀어지자 그 틀어진 방향으로 또 전력질주하는, 심지어 집중해서 질주하는 제 자신을 보면서 깨달았아요.
우리의 삶은 수많은 행동들의 결과로 이루어지는데, 우리 adhd들은 남들에 비해 이 행동들의 수가 훨씬 더 많구나. 행동은 그 방향과 크기로 이루어지는데, 우리는 워낙 많은 행동들을 해서 각각의 행동의 크기가 들쭉날쭉하고 가끔씩 좋아하는 행동에는 이 크기를 거의 몰빵하는구나. 그리고 콘서타는 이 행동들 간의 우선순위를 잡아주는데 조금 도움을 주고 원하는 행동의 크기를 전체적으로 향상시켜주는구나. 하지만 행동의 방향을 바꾸지는 않는다! 그리고 우선순위를 잡아주는데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애초에 우선순위를 위한 기준이 잘못되어있으면 엉뚱한 우선순위를 도출한다!
저같은 경우는 일의 의미파악을 제대로 못하거나, 어떤 일의 마감기한이 지나면 그 일은 잘못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 오류가 자주 나는 것 같아요. 그 일이 마감기한을 넘겨도 일의 가치는 그대로이고, 결과물의 가치도 그대로이다 라는 어이없는 생각을 하는 것 같네요... 사실 위 마감기한 문장을 타이밍하면서도 어? 마감기한 넘겨도 결과물은 결과물 아니야? 라는 생각을 하고 마음속에 위기감이 없는걸 보면 이거 심각합니다. ADHD들은 시간 개념이 잘 없고, 계획과 일의 순차적 진행을 어려워한다던데 콘서타는 왜 이 "마감 기한"의 중요성을 제게 일깨워주지 못하는 걸까요 ㅠㅠ 어쩌면 평생동안 마감 기한의 중요성을 경시하며 살아온게 누적되어서 습관처럼 굳어져버린걸지도 모르겠어요. 어쩌면 콘서타는 마감기한이라는 개념에 켜켜이 쌓인 먼지들을 천천히 털어내고 있을지도 모르죠. 적어도 지금 제가 어떤게 문제인지는 정의내리는데 성공했으니, 마감 기한에 위협을 느끼는 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겠어요.
결국 콘서타는 수행능력 향상에는 도움을 주지만 그 수행하는 행동이 항상 제가 바라는 행동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콘서타같은 약물은 내 인생을 adhd로부터 해방시키는 마법의 약물이다 (x) adhd는 나의 특성이자 기질이며 콘서타는 어떤 행동을 하려는 목적이 있을 때 그 수행을 도와주는 보조제같은 약물이다 (o) 결국 제 삶의 방향성과 제 행동의 방향을 결정하는건 약이 할 수 있는게 아니라 제 자신이 스스로 해야한다는... 좀 더 제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해줘야 콘서타가 제 기능을 할 것 같았어요. 이 기준을 정한다고 해서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변하지는 않겠죠. 평생 살아오면서 형성된 습관들이 많으니! 점진적으로 나아지면 만족할 것 같아요. 콘서타를 복용하며 만족스럽지 못한 날을 보내고 나서 바로 이런 생각을 한건 아니고, 에이앱 커뮤니티에 여러 좋은 글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참 에이앱 커뮤니티에 도움 많이 받는 것 같아요. 또, 저랑 소름돋게 비슷한 분들과 그 분들의 통찰력을 주는 글들이 제게 정말 좋은 영향을 미쳐요. 늘 감사합니다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