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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를 선물한 엄마가 보내는 편지
Level 2   조회수 171
2023-04-18 18:32:12



이 글은 나와 아이의 ADHD를 진단 받은 후,

나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며 이 홈페이지를 막 알게 된 무렵에

작성한 편지입니다.


그 당시는 처음 ADHD를 가진 분들의 오픈채팅방과 에이앱 홈페이지를 접하며

아, 나 혼자 이 별에 떨어진 외계인이 아니구나. 사실, 나와 같은 별의 사람들이 있구나.

안도하기도 하고... 또 씁쓸해 하기도 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마주하며

나의 ADHD를 혼란스럽지만 조금씩 인정해 나가던 시기였습니다.


에이앱의 게시글을 보다 보니,

사랑이 두렵고-. 자녀를 계획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진 A분들이 많이 계신 것을 알게 되었고,

참 많은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누군가 감내하고 있는 외로움을, 어지러운 감정들을,

혹은 단단하고, 확고한 그 마음을, 긴 긴 고민 끝에 내린 선택 들을-.

개개인의 가치관을 감히 논하고자 하는 글은 아닙니다.


그저, ADHD를 선물한 엄마가 되어버린 나의 이야기, 나의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

그 뿐입니다.


그래도 만약,

그 선택이 여러분이 걷고 있는 마음의 길이 별도 달도 뜨지 않는 그런 어두운 밤이라서 라면...

언젠가 혹시라도...


내 아이가 그런 어두운 밤 같은 마음의 길을 걸을 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조금만 들어주지 않으시겠어요?


언젠가 세상이 너무도 혼란스럽고 너무도 원망스러워서 나의 마음조차 아이에게 닿지 않는 순간이 온다면.

누군가 -


나와 비슷한 길을 걸어온 누군가가 하는 이야기가 내 아이에게 닿아 그 아이를 위로해 주기를.

언젠가 엄마가 바람결에 실려 보낸 이 마음이, 그 아이의 곁에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편지를 올려볼 용기를 냈어요.



_

To. 빛나는 아이에게


아이야, 나는 결혼 전 누군가가 보기에도 자립심이 강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씩씩하게, 아픈 부모를 부양한 기특한 효녀였고,

어디에서도 잘 살아갈 생활력 강한 야무진 아이였다.


그러나 아이야, 내 가슴에는 커다란 구멍이 있어

그곳에서 알 수 없는 온갖 감정이 불쑥 불쑥 쏟아져 나와 뒤엉켜 진 덩어리에 휩싸여서

수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헤매였다.


때로는 세상을 미워했고,

때로는 분노 했으며,

때로는 밤 세워 슬퍼했다.


때로는 불신으로 가득 차

주위의 사람들을 상처 냈다.


엄마는 늘 외로웠지만 곁을 내 줄 줄 몰랐고,

엄마는 오랫동안 숨 막히는 악몽을 꾸고

그 속에 나를 파묻고 살았다.


나를 삼킨 이 덩어리에서

빠져나와 보고자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헤어 나오지는 못하였지.


때때로 이런 것이 삶이라면, 산다는 것은 참 이상하다 싶을 만큼 세상은 막막하고,

힘든 곳이었어.



그러나 그럼에도 쏟아지는 삶의 부채는 쉼 없이 나를 몰아세웠지.


그렇게 어쩌다 살아가다 보니,

간간히 떨어지는 신기루같은 세상의 따뜻함에 엄마같은 사람도 기대어 숨 쉴 수 있을 때가 있더라.


내가 이러한 이야기를 너에게 하고 싶은 것은...

내 세상이 불완전한 나의 뇌로 인하여 힘들고 혼란스럽고 외로웠으니,

나를 닮은 너 역시 그러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 아이야,

살아가며 네가 힘든 날이 아주 없을 것이라고는 말하지 못해 미안하구나.

하지만 아주 깊은 어둠 속에 빠지더라도,

누구에게나 밤이 오듯, 누구에게나 빛이 있다.


난 그걸 너를 통해 배웠고 네 아빠를 통해 배웠어.

당장에 앞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도....


세상엔 너를 안아줄 빛이 반드시 있을거야.


네가 아무리 깊은 어둠 속에 있다 하여도

세상을 돌아 너를 찾아 온 바람이 속삭이는 이야기를,

어둠 밖에서 토독 토독 하고

너를 도닥이는 빗방울의 도닥임을,


느낄 수만 있다면

반드시 다시 싹을 틔울 날이 올거야.



너는 나의 긴긴 어둠 속에서도 빛이 나던 찬란한 별이었으니

네가 세상을 살아가다 찾아 올 수 많은 밤들은

너만의 그 반짝이는 빛으로

네 인생을 아름답게 물들이겠지.


엄마는 네가 살아가다 너에게 준 나의 선물이

원망스러워 질 때가 있다면,

마음껏 나를 미워하고 원망했으면 좋겠다.


엄마처럼, 네 부모를 미워하는 일에

죄책감을 가지고 너를 미워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엄마에게는 엄마의 모든 것을 나라는 사람이여서- 사랑해주는 네 아빠가 있고,

엄마에게는 너희들의 맹목적인 사랑을 받은 시간들이 있으니,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엄마 걱정은 하지 말고 마음껏 미워해도 된단다.

그러다 언젠가 엄마가 생각날 때 내게 온다면, 

네가 내게 그랬듯이 나 역시 언제든 너를 안아줄게.


_

사실, 엄만 네가 나를 원망하지 않도록

너란 존재가 지금처럼 내 손을 잡고 언제든 울고 웃을 수 있게...

나를 잘 키워내고 싶은데, 그건 나의 몫이겠지.

_


너에게 ADHD와 약에 대해 설명하던 날,

나는 그 이전에 수십 수백 번을 고민 했던 수많은 말들은 다 필요 없었지.


그날은 너의 눈을 마주 보고 아무런 고민 없이 너에 대해 말할 수 있었어.


너의 눈을 보는 순간 모든 것을 알 수 있었어.

내가 헤맨 지난 모든 날들은,

이 순간 다 괜찮아 졌음을.


너에게 내 진심을 전하기 위해 지난 시간들을 돌고 돌아 온 것이라면,

나는 다음 생에도 기꺼이 그 시간을,

아니 그 보다 더 한 시간들이라도 걸어갈 것임을...

알 수 있었단다.


너에게 ADHD를 선물한 엄마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그 날,

너에게 나는 여전히 하나뿐인 "엄마"였고

너는 나에게 여전히 어둠 속에서도 빛이 나는 아이 그대로였지.

그 순간 너에게 있어서 세상이 말하는 ADHD라는 이름은, 정말이지 너의 아주 사소한 부분일 뿐이었단다.


그래, 내 ADHD를 발견한 날, 

내 남편이 내게 너는 너이지 않냐며, 대수롭지 않게 한 말은 진심이었나보다.

그가 나를 몰랐던 것도 아니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


긴 긴 가뭄에 누군가 흘리고 간 눈물 한 방울

긴 긴 극야의 밤

길 잃은 반딧불이가 잠시 놓고 간 불빛 한 줌.


하나 하나 끌어안고

살아가다 보니, 나는, 엄마는 그런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었단다.


아니... 아니 애초에 엄마는 누구보다도 작은 반짝임을 잘 알아차리는 사람이었나 봐.

그래서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와중에도 세상의 아름다움에 감탄할 줄 아는 기특한 아이였나보다.


이제야 나는 내가 좋아.


내 아이야..

세상은, 내가 보는 너의 반짝임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이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너는 부던히도 너의 세상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 위해 그들의 언어와, 그들의 사고를 배워야 할 테지.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아서, 언젠가 네 본래의 모습을 잊을 수도 있고, 일방적인 소통에 그들이 미울 수도 있을 테고...


질환.

자식에게 유전적인 질환을 물려 준 엄마가 하는 말이 참 장황하고, 이기적으로 들리고 어이없을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하지만 아이야.


넌,

기꺼이 이 세상에 환영받아 나올 만한 아이였어.

넌,

마땅히 사랑 받을 아이지.



너의 쌩뚱맞은 대화들은, 사실 자세히 보면

네 세상 속에 숨겨둔 놀라운 아이디어들이

속삭이는 비밀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너의 좀처럼 말하지 않는 속마음 들은, 사실 자세히 보면

네가 아직 어려도, 생각이 깊은 아이라는 것을 알게 하지.


너의 예민함과 너의 불안은, 사실 자세히 보면,

네가 얼마나 섬세한 아이인지 감탄하게 하고,


네가 얼마나 많은 일에

남들보다 큰 용기를 내고 있는지 감동하게 해.


너는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을

결국엔, 해내는 아이였지.


너는 누군가에게 감동과 사랑과 참된 용기를 알려준 사람이란다.



그러니, 너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일을 조금 덜어낸다 하여도.... 안일하다 말할 수 없겠지.

언젠가 너는 나 없이도 너의 삶을 채워 나갈 테니 말이야.


다만,

엄마는 내가 나의 삶 속에 무수히 쌓아 올린 것들을 가지런히 정리하여서,

너의 길을 조금 더 마음 편히 걸어갈 수 있는 재료를 제 때에 전달해 줄 수 있기를...


네가 성인이 되어도 언제든 편히 와 쉴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다만, 네가 세상 속에 홀로 있다 느끼지 않도록 내 마음이 온전히 전달 되기를.....

바래 마지 않는 단다.


빛나는 내 아이야.

언젠가 세상이 밉고 엄마가 미울 때에도

부디 기억해 주렴,


네가 얼마나 멋진 일을 해냈는지.

네가 얼마나 감동스러운 존재인지.

부디 잊지 말고 너를 사랑해 주렴.


_


to. _

안녕하세요?

당신이 말하는 그 모든 단점들이, 내 눈에는 당신의 매력인 것 같아요. 


누구보다도 통통 튀는 당신

누구보다도 솔직한 당신

누구보다도 성실한 당신

누구보다도 용기 있는 당신을 응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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