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참 이상한 날이었다.. (고속도로에서의 4시간) 아침 조회수 35 2017-10-08 12:07:12 |
예전 국어시간에 배운 언어의 네 가지 기능(정보적 기능, 명령적 기능, 친교적 기능, 정서적 기능) 중 친교와 정서 기능 부분을 굉장히 낯설어했던 기억이 있다.
정보교환과 명령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단지 말을 걸기 위한 말을 한다니, 왜죠?
‘날씨가 참 좋네요’ 같은 말은 당최 왜 하는 건지? 넘나 쓸데 없지 않은가? 그리고 안 귀찮은가?
그렇다. 나는 말수가 아주 적은 사람이었다.
친한 친구들과 놀 때도 나는 주로 듣는 포지션으로 있다가 추임새만 슬쩍 넣어주는 역할이었다. 아니면 그냥 드립을 날리거나. 말이 많은 친구들을 보면 언제나 신기했다. 입을 저렇게 쉴새없이 놀릴 수 있다니 뭔가 부지런하다는 인상도 받았다.
그렇다고 음침하게 있었던 건 아니고 걍 과묵... 소지섭 같은 스탈이라 해야 하나.
남편과는 대화를 잘 하는 편인데 그래도 남편이 시덥지 않은 말을 자꾸 시킬 때면 내심 짜증이 났다. 아 말 좀 안 해도 되는 곳에 가서 혼자 살았으면!! 말하는 게 너무너무 귀찮다규!!!
언젠가부터 내가 말을 남들 수준으로 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아니면 약효 때문인가?
누군가 질문을 하면 단답형으로 일축하던 나였는데 이제 좀 자연스럽게 핑퐁이 되는 느낌.
며칠 전 어떤 사람과 고속도로 차 안에서 4시간 이상 있어야 했다.
그날 나는 콘서타를 먹지 않았고 무지 졸렸던 까닭에 조수석에서 꾸벅꾸벅 졸았는데 아무래도 운전자한테 실례되는 행동인 것 같아 가지고 있던 페니드를 꺼내 먹었다.
그리고 밀폐된 공간에 조용히 있는 게 영 어색해 운전자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다지 친하다고 볼 수 없는 그와 그때부터 참 많은 대화를 주고받은 것 같다. 시시껄렁한 얘기부터 웃긴 얘기까지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거의 대화를 주도하다시피하며 조잘거렸다. 양재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침묵의 텀이 아예 없을 정도로 마냥 순조로운 대화가 이어졌다..
어느 순간 이야기하는 게 싫고 입도 뻥끗하는 게 귀찮아졌다.
시간을 보니 먹은 지 딱 3시간.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난 페니드가 딱 3시간 간다)
헐ㅋㅋ
그 담부터는 짧은 문장 하나 말하는 데도 굉장한 스트레스가 느껴졌다. 할 말도 없었다. 맘 같아선 집에 갈 때까지 한마디로 안 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내가 너무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겠지 싶어 힘겹게 아주 조금씩 입을 뗐다ㅠ
나 평생 이러고 살았구나. 억지로억지로 말하고 억지로억지로 사람들과 어울리고 억지로억지로 모임에 참여하고..
이러니 삶의 질이 바닥이었을 만하지.
삶의 질이 바닥이었다는 걸 이제사 알았다는 게 더 슬픈 포인트다. 너무 힘들어도 ‘남들도 다 이렇게 힘들게 살겠지’ 하며 무조건 꾹 참고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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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의 인생은 귀찮음과의 전쟁이라 봐도 무방하다.
어떤 adhd는 먹는 걸 넘나 귀찮아해서 하루에 한 끼 정도 간신히 먹는다고 했다.
어떤 adhd는 움직이는 걸 싫어해서 집밖을 거의 안 나간다고 했다.
씻는 걸 귀찮아하는 사람, 청소하는 걸 귀찮아하는 사람은 흔한 경우다.
나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말하기였나보다. 약을 먹으면 말하는 게 1도 귀찮지 않다. 자연스런 대화가 가능하다.
여하튼 이날 이때까지 힘겹게 살아온 나한테 치어스. 이제 말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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