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참 이상한 날이었다.. (Birthday) 아침 조회수 62 2018-02-24 12:20:48 |
남편과 뷔페를 가기로 했다.
2년 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콘서타를 복용해온 난 오늘만큼은 콘서타를 먹지 않겠다는 훌륭한 결심을 했다.
이유인즉, 먹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계열의 약들은 식욕을 저하시키는 기능을 한다.
지금은 복용 초반만큼 식욕이 떨어지진 않지만(첨엔 정말 더부룩하다 못해 속이 울렁거렸다) 그래도 본래만큼의 먹성은 잃어버렸다.
이건 사실 만족스럽다. 예전엔 밥은 밥대로 먹으면서 중간중간 군것질거리를 찾곤 했는데 군것질 욕구가 딱 떨어져 집에서 과자, 사탕 따위가 사라졌다.
하여 오늘은 원래의 먹성을 회복해 맛있게 많이많이 먹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한 것이다.
(하지만 이거슨 결국 오판이었음이 밝혀지는데..)

사진은 남편이 찍은 것으로 내 접시가 아니다.
그렇다. 나는 뜨는 족족 먹느라 정신을 못차리는 짐승이었던 것이다.....는 과장이고 이런 글을 쓰게 될지 몰랐기에 찍을 생각을 안했다.
음식은 훌륭했다! 리버사이드 호텔뷔페인데 할인쿠폰을 이용하면 1인당 35000원 정도로 평일런치를 이용할 수 있다. 하나하나 맛 없는 걸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고퀄이었고 메뉴도 다양했다. (관계자 아님)
하지만 유명한 곳인 만큼 사람이 무척 많고 복작복작했는데 거기서 나의 adhd 핸디캡이 드러나고 말았다.
일단 사람이 많다는 것에 스트레스가 느껴졌고 인기메뉴 앞에서 줄을 서 대기해야할 땐 조바심 같은 게 내 속을 간지럽혔다.
전체적으로 시끄러운 분위기는 아니었음에도 내 바로 옆 테이블의 아이엄마 목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고등학생인 아이를 그것도 한참동안 야단을 쳤는데 그 말소리가 너무 또렷이 들려 먹는 것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조용히 해달라고 한마디 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렇다고 짜증을 낸 건 아니다. 나는 내가 adhd라는 걸 인식하기 전에도 타인에게 신경질을 낸다든지 스트레스를 표현한다든지 하는 편은 아니었다. 왜 이렇게 짜증이 나지, 왜 이렇게 안절부절 못하지, 왜 이렇게 나 혼자 급하지라고 생각하며 그냥 참고 살았다.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를 분리시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마인드풀니스(마음챙김)를 일찌감치 터득했던 거다. 이 부분에 대한 글을 다음에 본격적으로 쪄봐야겠다.
각설하고, 다 먹고 나자 피곤함과 졸음이 쏟아졌다. 잠이 약간 모자란 터였는데 배까지 부르고 나니 너무나 피곤하고 만사귀찮음증이 올라왔다.
하지만 영화가 예약되어있어 극장으로 이동해야 했다;

<판의 미로>로 유명한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 베니스 등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긁어모은 작품으로 판타지 로맨스물이다.
그런데 영화 초반 15분 정도를 잤다!
영화만큼은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봐야될 거 같아서 극장 들어오기 30분 전쯤 페니드 40밀리(오타임 20밀리!)를 먹었는데 약효가 생각보다 늦게 발휘되었다.
한창 땐 하루에 영화 3,4편도 봤을 정도로 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이건만 극장에서 자다니ㅠ 원래 페니드는 먹고 10분 정도면 효과 오는 게 아니었나? 속방정이쟈나..
15분 후 정신을 차리니 그때부턴 왜 이렇게 또 집중이 잘 되는지 놓쳐버린 앞 내용이 궁금했다;; 혼자 유추하며 보는 수밖에.
영화는 좋았다. 늘 그렇듯 스타일이 탁월하다. 사랑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코엑스몰에 언제 이런 게 생긴 겁니까. 간만에 구경했는데 깜놀했다.
코엑스몰이 처음 만들어지던 2000년대 초반에 봉은사 사거리에 위치한 사무실을 다녔어서 매장이 하나씩 들어오는 걸 다 목격했었다. 그런데 몰 한복판에 이런 근사한 도서관이 생겼을 줄이야.
이렇게 개방된 곳에서 adhd인 나는 책을 못 읽지만(정신 사납고 주의가 분산된다ㅠ) 근사한 건 근사한 것..
외국인 관광객처럼 사진을 마구 찍었다.
만사귀찮음증이 또 올라오려는 찰나 페니드 30밀리 또 먹음;;
페니드로 오르락 내리락한 생일날을 보내고 집에 들어오니 여자컬링 한일전을 하고 있었다.
남은 약발을 이용해 열심히 시청. 연장전 끝에 한국이 이기는 것을 보고 기진맥진.
요약/
메틸페니데이트의 위력(내 전두엽의 부실함)을 또 한번 경험한 하루.
그냥 12시간 가는 콘서타 먹고 살자. 롤러코스터 탄 것도 아니고 이거야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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