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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랑 대판 싸웠다.
Level 2   조회수 86
2018-02-25 04:41:04
흔히들 그렇게 얘기한다.

ADHD는 유전적인 요소가 강해서 부모가 ADHD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면

자식도 ADHD가 나타날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고.

그런 얘기를 감안하자면 나는 정말 돌연변이 중 돌연변이다.

우리 외가와 친가를 통틀어서 ADHD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나는 가족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지내는 게 참 어려웠다.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우리 가족들 중에서 난 항상 혼자였다.

그리고 그 때나 지금이나 나의 대립구도는 90% 이상이 엄마다.

사실 대립구도라고 하기도 웃긴 게,

엄마와 아빠, 동생이 한 팀이고 나는 나 혼자다.

3대 1로 싸우면 당연히 머릿수가 많은 쪽이 이기는 건데

내 이야길 들어주는 사람은 셋 중 아무도 없다.

우리 집의 실세는 엄마니까.

얘기를 들어달라고 하소연을 하면 그동안은 열심히 TV를 보다가도

지금 바로 들어가서 자야한단다 피곤하다고.

하도 겪어서 익숙해질 법도 한데,

아무리 자주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게 차별이라는 건가 보다.

차별 그거,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참 많이 아프네.

 

우리 엄마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이야기를 하자면,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오랜 시간을 사셨고

남아선호사상이 뿌리깊게 박혀있는 집안에서 자란 2남 5녀 중 셋째 딸.

거기다 자기 생각만이 정답이고 옳은 것이며

그 방법대로 하지 않는 사람은 전부 틀린 사람이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어서

내가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나하고 정말 많이 부딪혔다.

 

아빠, 엄마, 나, 남동생 이렇게 네 명이서 살았는데

그 셋이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TV를 보면서 깔깔거리고 웃는 동안

나는 방 밖을 나갈 수가 없었다.

그들은 한 편이었고, 나는 그 집에서 투명인간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엄마는 아들보다 딸이 잘 되는 꼴을 못 보는 사람이었고,

내가 주변사람들로부터 뭔가를 인정받는 날에는

꼭 별 것도 아닌 걸로 잘난 척 한다며 후려치기를 해서 기분이 우울해지게 만들곤 했다.

"외국어만 백날 잘하면 뭐해? 다른 건 다 모자라는데."

"아~ 쟨 또 왜 저래 진짜!!! 짜증나 죽겠어! 넌 친구들이랑 몰려다니지 말고 공부나 해, 좀!"

그런 말을 30년 가까이 듣다 보니

내가 생각하는 나는 한없이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에

나에 대한 자존감이 정말 낮았다.

 

어떨 때는 이런 적도 있었다.

중학교 1학년, 입학하고 얼마 안 됐을 무렵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갔는데 그 친구들 앞에서 대놓고 하시는 말씀.

"너보다 공부 잘 하는 애들 아니면 데려오지 마."

그 말이 순식간에 친구들 사이에 퍼져서 나는 학교에서 그때 친했던 친구들을 모두 잃었다.

 

그리고 사람을 사귀는 방법을 몰라서 고등학교 때까지 늘 혼자 다녔다.

대학교 다니면서 그나마 부모님과 떨어져서 생활하게 되었고,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내가 외향적인 사람이라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그런데도 가족들과 만나면 항상 주눅들곤 했다.

부모님은 어떻게 하면 아들이 더 빛나기를 바라는 분들이었고,

그러기 위해서 상대적으로 나는 깎아내려져야 했다.

그러니 가족들만 만나면 자존감이 바닥칠 수밖에.

 

하지만 정말 운 좋게도 29살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하루하루를 정말 의미없이 보낸 적도 많았지만

20대의 마지막만큼은 멋지게 장식하고 싶다고.

그때 처음으로 악바리같이 운동을 해서 다이어트도 성공하고, 독서도 하기 시작했고,

일기도 쓰고 나름 의미있게 살기 위해 많이 노력한 적이 있었는데,

그러고 나니까 지금은 그 때만큼 자존감이 낮지는 않다.

"그냥 남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안 쓰고 그냥 내 갈 길 갈래.

내 인생 그 사람들이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그래야 돼?"

이런 마인드가 요즘의 나에겐 좀 더 가까운 것 같다.

 

암튼. 그런데 엄마와 크게 싸운 후 요며칠은 참 우울하다.

난 기본적으로 밝은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도,

이번엔 그 우울한 감정이 꽤나 오래 간다.

마음의 상처가 생각보다 꽤 큰 것 같다.

혼잣말로 '괜찮아, 너무 마음쓰지 마' 라며 스스로를 달래보지만

그럴수록 더 내 스스로가 비참해진다.

 

엄마가 가지고 있는 정말 안 좋은 습관 중 하나.

엄마의 감정이 안 좋을 때면, 엄마는 불시에 나를 찾아와서

하나부터 열까지 트집을 잡고 모든 화나는 감정을 나에게 다 쏟아놓고 가 버리곤 한다.

그리고 이제는 엄마가 그걸 즐기는 것 같다. 엄마의 취미생활이 된 것 같은 느낌.

내가 속상해서 눈물 흘리는 걸 지켜보는 게 엄마에게는 그저 고소하고 쌤통인 건가 싶다.

그럴 때 마다 나는, 내가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 내지는 감정 샌드백이 된 것만 같다.

그렇게 나한테 모든 안 좋은 감정을 다 쏟아내고 가 버리면,

그 이후에 갖게 되는 내 감정은 온전히 내가 다스려야 하는데 그게 정말이지 너무 힘들다.

 

그나마 같이 안 사니까 다행이긴 한데, 다음엔 좀 더 먼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이라는 게 이런 건가? 한명 맘에 안 들면 따돌리는 거.

이건 가족이 아니라 왕따잖아. 이름하여 가족 내 왕따.

우리 집에 나와 같은 뇌를 갖고 태어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날 이해해줬을까?

그냥 다른 사람들이랑 조금 다른 뇌를 갖고 태어났을 뿐인데,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행동 패턴도 사고방식도 조금 다를 뿐인 건데

우리 집에서 그건 완전히 이상한 사람이나 하는 짓거리가 되어버린다.

왜냐하면 다른 가족들은 엉뚱한 생각도, 일의 순서를 못 잡아서 우왕좌왕 하는 것도 전혀 안 하니까.

그래서 난, 우리 집에선 내놓은 자식이다.

누구나 인정할 만큼 언어에 재능이 있고, 어디 가도 성격 좋다는 말은 많이 듣는데도 말이다.

너가 언어를 잘 해봤자 얼마나 잘 하냐며, 어설프게 좀 하는 것 갖고 나대지 말라나.

엄마 아빠랑 친하고, 동생이랑 우애좋은 사람들이 요즘 들어 참 부럽다.

나도 인정받고 싶다. 제 3자가 아닌 가족들한테.

그리고 따뜻한 말 한 마디라도 들어보고 싶다. 돈 필요할 때 말고도.

유난히 참 서럽네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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