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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막다른 골목의 추억
Level 2   조회수 32
2018-04-04 23:29:43
올해 내 나이는 스물 아홉.

하지만 사람들은 내 나이를 들으면 깜짝 놀란다.

동안이라서가 아니라..

스물 아홉이나 됐는데 .. 쩜쩜쩜..  별로.. 스물 아홉 해나 인생을 살아온듯한 노련함이 안보이는..

여전히  서툰게 너무 많고, 작은 일도 버겁고 힘들어하는게 많은.

나이에 맞지 않게 여전히 사춘기같은 유리멘탈..

사회생활 같이 하기에 전혀 반갑지 않은 동료 스타일..

처음엔 직장을 다니다보면 나도 무던해지고 나아질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려 3년이 지나도 그대로인 나의 모습을 보며.

왜 환경에 맞게 변하지 않지? 아니 나는 왜 성장을 못하지?

심지어는.. 나는 왜이렇게 이기적이지? 왜 나는 항상 나의 불안, 나의 감정이 먼저 앞서서 공적인 일을 그르치지..?

그걸 나는 내가 남들에 비해 나밖에 몰라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있는 책임감, 믿음직스러움, 차분함.

그런게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생기는게 아니라

나에게는 여전히 먼 것이었다..

결국 나는 자의 반 타의 반 직장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일 자체는 내가 너무도 가치를 느끼는 일이었지만 원활한 의사소통, 팀워크, 빠른 눈치와 행동이 필요한 일이라

내가 능력도 없으면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다시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조금은 늦은 나이, 나는 다시 취준생이 되어버렸다.

지금껏 경력을 쌓아온 일도 내 적성에 맞지 않다는걸 알아버렸다.

나는 갈 길을 잃었다.

극도로 불안해서 태어나 처음 찾은 신경정신과에서

내가 누구인지 처음 들었다.

가만히 있을 때는 겉으로 보기엔 별 문제가 없어보이지만

내적으로 불필요하게 안절부절하며 에너지를 쓰기 때문에

주의력이나 집중력이 매우 떨어지는, 조용한 ADHD.

그동안 내가 왜 이러지 내가 왜 이러지 이러지마 진짜 나 왜 이래

스스로 속으로 나를 얼마나 혼내고 욕했었는지.

내가 얼마나 싫고 달라지고 싶었는지.

그런데 내가 가진 ADHD라는 특징을 알고 나니까.

비로소 내가 이해되고 나를 미워하는 일을 멈추게 됐다.

그리고 막막하게만 보였던,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일들도

인지행동치료로 조금씩 개선할 수 있다는 희망을 생각해보게 됐다.

스스로 치매라고 생각할 정도로 한심했던 내 무계획적이 생활은

요즘 필사적으로 일정을 기록하고, 시계를 항시 가지고 다니는 노력을 통해

아주 조금씩 개선 중이다.

얼마 전 우연히 SNS에서 이런 글귀를 봤다.



"뭘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내 인생에 넌더리를 낸 적도 많았지만,

그래도 그게 나라고 나는 몇 번이나 나 자신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도 하찮은 일이 아니었다."

- 요시모토 바나나, <막다른 골목의 추억> 중에서

꼭 나의 이야기 같았다.

그동안 나는 나 자신을 바꾸기 위해, 부정하기 위해서만 애썼는데

이제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에 집중해보려고 한다.

지금 쓰는 글도 이렇게 뒤죽박죽 매끄럽지 못하지만

예전같으면 나 글 참 못 쓴다 하고 다 지워버렸겠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 나를 인정하려고 한다.

그리고 다른 분들과도 나누고 싶다.

어쩌면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으셨을 분들께..

지금의 고통도 언젠가는 막다른 골목의 추억이 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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