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입주신고합니다 울프 조회수 42 2018-03-26 22:09:34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첫글이네요. 사실 블로그 입주신청 글을 보내놓고 계속 미루다가 이제야 첫글을 씁니다. 공부하느라 바쁘긴 하지만 월초에는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계속 작은 일이지만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가 하는 저 스스로를 보면서 아 이것도 고쳐야 하는데 싶었어요. 처음이니까 오늘은 자기 소개를 할까해요. 누군가가 제 글을 보고 저인 줄 알면 조금 곤란한 상황이라 약간의 거짓말을 섞게 될 지도 모르겠네요 (만약 봐도 모르는 척 해주기 쉿) 저는 확진받은지 몇개월 된 @에요. 어렸을 때 의심이 안 들었던 건 아닌데, 성인이 되어서야 병원에 가게 된 이유는 대체로 일상생활(또는 사회생활)에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지능 @거든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어딜 가나 눈에 띄는 사람이었어요. 한국은 워낙 공부 잘하는 학생에게 관대하고, 높은 지능과 고도의 학업성취가 다른 모든 단점을 능가하는 장점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어렸을 때에는 산만하고 충동적인 행동이나 욱하는 성격 때문에 애가 이상하다, 특이하단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고학년이 되니 선생님들은 저를 모두 좋아했고, 가족들 빼고는 아무도 제가 문제가 있다고(물론 가족들도 그런 종류의 심각한 문제라고는 생각 안 했지만) 생각하지 않았어요. 아무리 주의력이 부족해서 수업시간에 딴짓을 해도, 게임 같은거에 빠져서 매일밤을 새고, 지각하고, 수업시간에는 졸다 못해 엎드려 자는 생활이 계속되어도 어른들이 보는 저는 성적이 좋은 우등생이고 모범생이었던 거예요.
그렇지만 저는 전혀 괜찮지 않았어요. 나는 왜 이럴까, 왜 수업에 집중을 못할까, 왜 자꾸 공부를 미루고 안 할까 왜 욱하는 성질을 죽이지 못할까, 왜 무언가 감정적인 동요가 생기면 그 생각에서 벗어나질 못할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불만이나 자괴감 같은게 너무 괴로웠어요. 물론 아무도 제가 그런걸로 괴로워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죠. 그 와중에도 성적은 좋았고 실제로 대학도 잘 갔으니까요. 대학에 가니 그런 문제를 느낄 상황이 별로 없어져서 그럭저럭 잘 살았습니다. 취미 맞는 친구도 생기고 적당히 외부활동도 하면서, 그냥 좀 게으르고 공부는 열심히 안 하는 학생으로 지냈어요. 그동안 제 문제들이 저를 괴롭히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견딜만 한 정도의 불편함이었던 거죠.
그러다가 일종의 고시생 신분이 되었는데 다시 고등학생 때의 악몽이 되살아나더군요. 수업을 들어도 다른 친구들은 잘만 집중하는데 저는 맨날 딴짓만 하고 집중을 못했어요. 잠을 얼마나 잤는지와 상관없이 아무리 커피를 들이부어도 잠에서 깨지 못할 정도로 정신을 못 차렸구요. 스트레스가 쌓이고 결과가 안 나오니 의욕도 떨어지고 무기력해지고, 점점 더 이상 이렇게 살다가는 죽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가득차게 됐을 때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경각심이 들었어요. 사실 처음에 의심했던 건 기면증이었는데 찾아볼수록 @쪽이 훨씬 증상에 맞았어요. 에이앱 게시글을 보고 병원을 찾아 진료예약을 하고, 설문지 검사, 뇌파검사를 통해 확진을 받았습니다. 검사 받기 전에는 혹시나 내가 @여서가 아니라 의지가 없고 성격이 이상하고 게을러서 힘든것 뿐이면 어떡하지 걱정이 됐는데 아니었다는 걸 확인받고 나니 오랫동안 쌓였던 자기혐오가 조금은 나아지는 기분이 들면서 오히려 안심이 됐어요.
그 뒤로 몇개월, 약물치료는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었고 여전히 크게 바뀐 건 없네요. 그렇지만 제 문제가 뭔지 분명하게 알게 된다는 건 정말 도움이 됐어요. 마치 어두운 숲속에서 누군가 빛을 밝혀준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자존감은 여전히 바닥이지만 자기혐오는 이제 그만할 수 있게 됐어요. 제 잘못이 아니었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에이앱을 보면서 나랑 같은 문제와 고민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고 공감하면서 많이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됐습니다. 가끔 일방적으로 남에겐 말 못하는 속마음을 털어놓고 가는 공간이 되겠지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