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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았던 만남, 그리고 이별.
Level 2   조회수 46
2018-05-23 08:40:04
얼마 만나진 않았지만, 정말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한지 어느덧 일주일이란 시간이 지나버렸다.

누군가에게 좋아하는 감정을 드러내는 게 쑥스러워서 늘 내 감정을 숨기기에만 급급했던 나는

이 사람에게는 뭐에 홀렸는지 고백이란 걸 했다. 그리고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정말 미쳤구나! 남자한테 고백이라는 걸 하다니!'

그는 전혀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라 처음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그날 밤 함께 드라이브를 하러 가자며 나를 불러냈다.

그렇게 그는 첫 데이트를 신청하면서 고백을 받아들여줬고,

그리고 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연인사이가 되었다.

그게 벌써 두달 전의 얘기네.

고맙게도 그는 내가 그에게 진심을 보여줬던 것처럼 그도 나에게 진심을 다했고 정말 날 행복하게 만들어줬다.

어딜 가든 날 제일 먼저 챙겨줬고, 예쁜 곳이 있으면 따로 메모를 해 놨다가 나와 함께 가곤 했다.

지금까지 30여년의 시간을 살아오면서 내 인생에 봄이 처음으로 찾아왔다고 느낄 만큼 너무 좋았다.

하지만 인연이라는 게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에 다 담을 수는 없지만 지금 내가 겪고 있는 특수한 상황이 우연찮게도 그의 상황과 맞물렸고,

그의 상황도 그것 때문에 여러모로 곤란해졌다는 걸, 어렴풋이나마 눈치챌 수 있었다.

그래서 이런 저런 고민 끝에 결국 우리는 헤어짐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기쁠 때든 힘들 때든 늘 함께 하기로 했던 약속도 더 이상은 지킬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정말 감사한 일은 내가 그 사람을 진심으로 대했던 것처럼 그도 나를 진실하게 대해 주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예쁜 추억을 만들어주었고, 사랑받는 느낌이라는 걸 처음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줬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서로에게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주기로 했다.

지금 당장은 서로 감정을 정리하는 게 힘들겠지만, 서로가 밉거나 싫어져서 헤어지는 것이 아니었고

우리가 처한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된 것이었으니까.

우리가 서로의 감정을 공유했던 사이라는 이유만으로 남보다 못한 사이로 지내고 싶지는 않았고,

서로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서로가 서로의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으며 그래서 더 진심어린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아예 안 보고 싶지는 않다는 게 그와 나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서로 볼 꼴 못 볼 꼴 다 보고 육두문자 날리면서 헤어지는 커플들도 얼마나 많은데

그런 것에 비하면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는 우리가 서로의 감정정리를 위해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나에게 이렇게 물어올지도 모른다.

"그게 가능해요?" 내지는 "힘들지 않아요?" 라고.

근데, 운이 정말 좋았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과 나는 그런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말이다.

봉사활동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는데, 거기선 당분간 헤어졌단 얘기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아니 계속 잘 만나고 있는 상황인 것처럼 둘 다 그렇게 행동했으니까.

그리고 그 봉사활동이 끝나게 되는 6월 중반부까지는 그렇게 할 생각이다.

사랑하던 사람의 목소리를 더이상 들을 수 없고,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생겨도

이제는 당분간-언제까지가 될지는 나도 아직 잘 모르겠지만- 연락할 수 없는데 왜 안 힘들겠는가. 나도 사람인데.

거기다 내가 먼저 좋아하던 사람이고, 그에 대한 감정이 아직 남아있는 상황인데 왜 힘들지 않겠는가.

나라는 사람의 특성 상 속으로 상처라는 걸 갖고 있어도, 겉으로는 씩씩한 척 또는 밝은 척하면서

별 일 없이 지나가는 것처럼 보여서 그렇지, 사실은 나도 많이 아프다.

그것도 그냥 아픈 게 아니고, 아파서 미칠 것 같다.

뭘 해도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자꾸만 생각나니까.

그래서 예전에 입던 바지는 허리춤에 내 주먹이 두 개가 들어갈 정도로 살이 빠졌고,

지난 며칠간은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고, 먹은 것도 다 게워냈다. 너무 힘들어서.

그래도 일주일이란 시간이 지났다고 이제 서서히 이별이라는 걸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만약 그 사람과 내가 인연이라면 돌고 돌아서 어떻게든 다시 만나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서로 각자의 반려자를 찾아서 그들과 함께 행복한 인생을 꾸려나가게 되겠지 싶다.

그냥 한 마디로 이건 그와 내가 노력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시간이 지나면, 서로에게 정말 좋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지도 답이 나올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함께 하고 있는 봉사활동에서 어울리는 걸 제외하면

당분간은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그 사람에게 먼저 연락을 한다거나 하고 싶지 않다.

나에게 헤어짐을 고하면서도 죄책감과 너무 미안한 마음때문에

결국은 참다참다 울먹거리며 내 앞에서 눈물을 쏟아내 버리던 그 사람에게

나도 그를 못 잊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고,

나중에 혹시라도 다시 만나게 될지 어쩔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의 기억속에서의 나는 질척대는 사람으로 기억되기 보다

그래도 헤어짐 조차도 참 괜찮았던 사람, 그때보다 내적으로 더 많이 성숙해진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서다.

그냥 지금은 시간과 감정의 흐름에 따라 물 흐르듯이 그렇게 지내야 할 것 같다.

아플 땐 아파하고, 웃음이 나올 땐 웃고, 눈물이 나오면 울기도 하고, 화도 내 보고....

그러다 보면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날이 하나둘씩 늘어가겠지.

오늘은 비도 오고, 못 마시던 소주도 친한 동생과 둘이서 두 병이나 마셨는데

인제 이런 넋두리도 그만 하고 자야겠다.

속이 저릿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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