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posts

명예의전당



글보기
2018. 06. 18 하나의 과정이 끝나가고 있다.
Level 4   조회수 28
2018-06-18 17:53:03
2017년 1월 무렵, 그러니까 내가 졸업한 지 약 5개월 쯤 됐을 무렵의 27살이었을 때, 나는 용돈벌이 겸 사회생활 준비운동 겸 들어간 매장직에서 앗뜨거 하고 데인 상태였다. 나는 내가 어디 가서 일이나 하면서 살 수 있기를 바랐다. 공황이 오랜만이지? 괜찮니? 하고 매일 아침마다 등을 두드려서, 나는 이전부터 생각하던 사서자격증 평생교육원도 가지 말까, 집 밖에 나가기가 무섭다 하면서 망설이고 있었다.

그래도 3월에 신청은 한 것은 우유부단을 너무 해서 놓친 선택지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냥 <하기로 했던 거니까 하자> 했던 것이다. 아무 기대도 없이. 바보같이 그때 나는 학교 사람들 앞에서도 취업 걱정을 하는 척을 했다. <아무 일도 못하고 죽을 것 같아서 무섭네요. 제가 어디에 쓰일 데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제 고민 좀 들어주실래요?-이건 취업걱정 이전의 문제다-> 할 수는 없으니까. <와 청소 아르바이트가 천직인 것 같은데 집에서는 빨리 공시나 준비하래요!>했던 것이다.

솔직하게 밝혔더라도 별 상관은 없었겠다고 지금은 생각하지만, 어쨌든 반장을 뽑는다고, <아침에 와서 기계를 켜 놓기만 하면 된다고> 했던 말을 굳게 믿고 손을 들었던 것도 <제가 어디에 쓰일 수나 있는지 모르겠는데>의 검증이 필요해서였다. <나도 아침에 와서 기계를 켤 수는 있겠지!> 아직도 기억난다. 나는 평생교육원 조교가 주는 열쇠를 받아서는 (손 덜덜 떨면서) '거기서 작은 열쇠로 프로젝터를 켜는 거'라는 말을 속으로 중얼중얼(까먹으면 안돼 안된다고) 반복했었다... 세상에 그날 내내 프로젝터에 문제가 있을까 걱정하고 다음주 학교 가기 전날에는 잠도 못 잤다!

...와 진짜 상태 나빴구나 싶다. (최근에는 안켜놓고 반장 이거 왜 안 켜놨어! 하면 헤헿 지금 켜께여 한다...) 집에서는 이놈이 뭐라도 하고 살기나 할까 하고 걱정했던 것을(약 2년만에 또 정신과에 갔다왔으므로) 일주일마다 안양으로 통학하는 미친짓을 내 아들이 하고 있구나... 하고 미련곰팅이 쳐다보듯 하게 만들었다. 집에 걱정을 끼치는 것보다는 기가 차게 하는 게 낫다고 본다...

다시 돌아가자면, 그때 당시의 나를 사람들이 다소 불상하게 봤던 것은 단순히 통학 거리가 남한을 가로질러서만은 아니었다. 낮은 자존감이 흐물흐물 주변으로 흘러내리는 상태였다. 관심이 필요한 초등학교 1학년 어린애 같은 상태였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아니 감사한 일이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를 먹이고, 보살펴주셨다. 그 하나하나의 음식이며 말들이 내 마음을 재구성했다. 마음이 아플 때는 아무것도 아닌 말에서 가슴이 찡할 수 있으므로. 나는 생각보다 많은 일을 했지만(행정실 거짓말쟁이!), 또한 학우들의 말로 매번 코끝이 찡해졌다. 그 찡함은 내 마음이 회복되는 감각이었다.

결국 나는 그들을 위해서 일할 수 있었다.(이정도는 말해도 되겠지.) '너무 많이 신세를 졌다'거나 '미안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그분들 덕분이었다. 그걸 요 한두달 까먹고 있었던 것 같다.

지난주 16일에 마지막 수업이 끝났다. 2017년 3월에 시작해서 2018년 6월까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지금이 바로 그 6월, 춥고 이른 봄에 같이 수업을 듣는 수녀님한테 모과차를 얻어먹고 몰래 울먹울먹했던 내가, 경기도에서 통학을 시작하면서 짝사랑에 가슴을 태우다가, 어느새 끝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음주는 서울시 공무원 시험과 학교의 기말고사가 같이 있는 날이다.

취업보다 내 자신이 걱정이었던 나는 이제 시험의 당락을 걱정하고 있지만, 이렇게 가끔 환기하다 보면 초조함이 사라진다. 나는 남들보다 느리다. 나같은 사람에게, 혹은 이 사이트의 모두 같은 사람들에게(불쾌하시다면 죄송해욧...) 취업은 그냥 돈 받을 곳을 얻는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 그것은 살아도 된다는 허락, 내가 나인 상태로 계속 살기 위한 희망, 혹은 늘 어디에서나 어딘가 이상한 사람이었던 내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진다는 회복을 의미한다.(물론 제대로 일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빠름이 무어가 중요할까. 그런 곳이 있다는 것만 분명해져도 사는 게 배는 수월해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정말 작은 희망을 요 2년간 확인했다. 이분들 덕분에.

내 삶의 고비에 찾아와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기 위해 오랜만에 글을 썼다.
댓글
자동등록방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