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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3
Level 4   조회수 32
2018-07-03 23:37:20
#1.

 

독서실 알바를 잘렸는데 그것 자체는 마음관리 면에서 큰 사건이 아니었다. 못하는 것을 못했을 뿐이니까. 말이 독서실 알바지, 신규 회원 받으면서 지문등록도 해야 하고, 방별로 가격도 위치도 다른데 적절한 순서로 안내해야 했다. 게다가 위에서 내려다본 도면을 그대로 찾아가 안내하는 것이 내게는 정말로 어려웠다. 방향감이 뒤틀린 듯한 감각, 엑셀 대조작업을 할 때의 감각. 물 속에서 숨을 쉬라고 해도 안 되는 것처럼.

또 어두운 조명 안에서 먼지를 쓸어야 하는데, 시간 내에 하려면 눈에 띄는 것들을 빗자루로 먼저 쓸고, 먼지포로 나머지 부분을 슥슥 닦아야 했다. 소위 그 요령도 문제였지만 애초에 내게는 눈에 띄는 것들이 없었다(내 시력은 0.1 미만이다. 안경 끼면 0.7이지만 자잘한 건 1도 안보인다.) 체감 난이도로 보면, 단언컨대 시험지 알바나 반장 일보다 어려웠다.

아 그것도 있었다. 밀폐된 독서실이라 사람 빈 곳을 찾아가서 먼저 청소해야 했는데, 상기했듯이 지도로 찾아가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고, 육안으로 확인하자면 다리쯤까지 고개를 숙여야 했다.(사장님은 후자였다.) 내 눈에는 심지어 그 다리의 유무조차 잘 보이지가 않아서 몇 번이나 허리를 숙여야 했는데, 아니 솔직히 여고생들한테 그러기가(고객의 대부분이었다.)... 이 악물면서 하다보니 더 느려졌다. 몸이 기름 안 친 양철로봇처럼 뻣뻣해지는거다. 식은땀도 나고.

요컨대 물 속에서 숨 못 쉰다고 내가 슬플 이유는 없었다.

 

#2.

 

문제는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내가 독서실 알바도 잘린다는 사실에 새삼 충격을 받아서, 이전에 국시원 아르바이트가 어려웠던 점까지 더해서 다시금 이놈이 밥이라도 먹고 살겠냐는 걱정을 하시게 되었다. 그건 참 나한테 있어서는, 너도 운전 할 수 있다고 재촉하시던 말이 생생하게 떠오르는만큼 화나는 일이기도 했고, 내가 언제까지 같이 살 수 있겠냐는 말만큼 죄송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걱정을 하다보면, 계속 생각만 하다보면, 시야는 좁아진다. 아니 뭐, 설거지 하다 때 하나둘 놓치는 것까지 걱정하시는데 솔직히 그런 건 꼭 완벽하게 설거지를 해내야만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그냥 본 사람이 한번 더 헹구면 된다. 일반 기업이라면 몰라도 도서관이면.

그리고 반장 일을 하면서, 공공도서관에서 근무하시는 아주머니들과 이야기하면서 느낀 거지만, 내가 느끼기에 속도가 답답해 미칠 것 같은 그 아주머니들도 잘만 공공도서관에서 일하신다. 산다는 게 그냥 사는 것일 때도 많다. 그냥. 걍. 걍.

 

 

#3.

 

사실 요즘 @증상이 심해진 걸 느낀다. 어떤 일의 마감이 다가올때까지 일을 하지 않거나, 시각인지력이 어마어마하게 하락해서 1번 문제의 1번 2번 보기를 보다가 2번 문제의 3번 4번 보기를 보기도 하고, 답안지 번호를 잘못 맞춰서 잘못 매기기도 하고.

살면서 마킹실수라고는 한 적이 없는 나라서, 당혹스럽기는 했다. 나는 이게 어쩌면 담배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한 이후 피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만큼 신경쓸 정도로 주의력이, 혹은 집중의 지속성이 떨어져 있기는 하다. 그래서 내일부터 남은 약을 하나씩 먹어볼까 싶다만... 이번에는 어떤 효과가 날까 싶어 걱정스럽다.

 

#4.

 

 

이번에 어머니가 놀라신 게 마음아프기는 하지만, 결국 이건 내 삶이다. 그걸 완연히 신경쓸 필요가 없다. 솔직히 이만하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나름대로 엄청 열심히 살아왔고, 살아갈 것이며, 여전히 내가 싫지 않다. 나름대로 노력하는 걸 인정해주지 않고 약이면 다 해결되는 줄 아시는 게, 그렇게 생각하고 약만 먹으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게 결국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시는 게 편해서이고, 그게 쓸쓸하긴 하지만, 그걸로 퍼질러 앉기에는 지난 고통들이 너무 컸다.

 

 

#5

.

그리고 무엇보다 공부를 하는 중에는 마음이 진정된다. 그게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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