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adhd를 진단받고 메디키넷을 먹은 것이 3개월 정도, 그리고 병원을 바꾸면서 콘서타를 먹기 시작한 것이 한 달 정도 되었다. 3월 내 생일 바로 다음날 병원에서 처음으로 cat검사라는 것을 하고 나와 관련 없으리라 생각했던 병명을 진단받게 되면서 처음에는 기대감이 컸다. 이제 나는 어쩌면 삶을 조금 덜 무겁게 느낄 수도 있겠다는, 심지어 삶을 즐기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합리적인 기대를 했었다.
분명 약은 나에게 효과가 있었다. 낮 중에도 침대에 앉아 졸곤 하던 습관들이 개선되고 아무것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자책감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던 시간도 줄었다. 집안일을 하고 밥을 챙겨먹고 해가 떠 있을 때 활동하고 달이 떠 있는 동안 잠을 잔다.
하지만 약만으로 바뀌지 않는 부분들도 있었다. 죽음을 가깝게 느끼고, 죽음이라는 생애주기적 단계에 대해 저항력이나 거부감이 높지 않아서 오히려 (남을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을) 두려워하는 것 <- 이 문제는 adhd 약을 복용하기 전에도 있었고 복용 4개월차인 지금에도 여전하다. 나는 죽음을 지나치게 상냥한 개념으로 느낀다. 절망감이나 분노감이 나를 압도하고 있지 않을 때에도 죽음이 기꺼운 무언가로 느껴진다. 그냥 잠이 드는 것처럼 죽고 싶은 것이며 최대한 그 죽음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적고 그 영향이 경했으면 좋겠고 웬만하면 별다른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다. 그냥 잠들듯이, 영원히 잠드는 상태가 되기를 원한다. 빠를수록 좋다. 이것을 넓게 보자면 '우울'이겠지만 여하튼 이 '우울'은 지금으로서는 약만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영영 약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약으로 나아진 부분이 있는 한편 어쩌면 약으로 영영 '고칠' 수 없는, 그냥 나 자체를 이미 구성하고 있어서 톱니바퀴처럼 내 일부가 되어 버린 문제들도 있을 수 있다 - 는 사실을 이제 슬슬 받아들이고
약 이외의 방법으로(도) 그 문제를 다루고 가져갈 나만의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인지한 시점, 에 내가 와 있는 것 같다. 모여서 '내'가 되는 톱니바퀴들을 망가뜨리거나 함부로 휘어버리지 않고서, 내가 여전히 지속가능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매뉴얼이란 것은 아마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업데이트해야 하겠지.. 피곤하겠지만 어찌됐든 삶을 죽음보다 우선으로 하고자 마음 먹었다면 외면할 수 없는 과제일 것이다. 당장의 이런 막연하고 대책 없어 보이는 기록들이라도 모이고 쌓이고 연결되다 보면 어떠한 선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죽음을 지나치게 친밀하고 다정하게 느끼는 것은 때로 내게 도움이 되고 때로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런 감정은 나와 지나치게 오래 함께하면서 내 몸에 스며든 일부가 되어 버렸다 는 사실을 마주한다. 이것이 지금의 단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