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03(1/2) 새벽에페니드 조회수 23 2019-01-03 07:05:55 |
| #1.
두 달쯤 전의 일이다.
시골에서 짐승처럼 일하다가 2층에 올라와서 잠시 쉬는데 거기 어렸을 때 내가 쓴 일기들이 모아져 있었다.
초등학생 때 썼던 충효일기... 그 이전에 유치원에서 썼던 그림책.
읽다가 정말 울 뻔했다.
교묘하게 다른 에피소드로 숨겨져 있었지만
거기에는 밥을 늦게 먹는다고 맨날 화장실에 갇혀서 오랫동안 밥을 먹은 이야기
옆자리 애가 손등을 연필로 찍은 이야기
애들이 내 싸인펜을 터뜨렸는데 선생님이 왜 싸인펜으로 장난치냐고 나만 혼낸 이야기...
실내화에서 압정이 나왔는데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
유년시절의 일기가 꼭 수형기(受刑記)만 같았다.
그리고 시대를 지나, 초등학교 3학년때 쓴 일기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반장이나 선생님처럼 앞에 나와서 말하는 사람 중에 좋은 사람 없다."
그리고 그 일기장 맨 앞 커버 뒤에 누운 사람을 칼로 찌르는 그림이 있었다.
섬뜩했다.
내 안에 있는 사람 무리에 대한 혐오가 이렇게도 뿌리깊구나.
거의 12년간 왕따당하는 사이 누구한명 도와준 사람 없다는 게 그렇게 화가 났구나.
그 원인은 역시 남들보다 느리고 모자란 데 있었는데
그걸 교정하려고 엄격해진 어머니에 대해서도 끔찍한 분노를 품고 있었구나...
#2
생각해보면 그런 극심한 유년기 이후 나는
좁게는 왕따 문제,
구체적으로는 왕따당하는 애를 방관하는 문제.
넓게는 '내 사정과 조건을 따져서 남을 돕거나 돕지 않는 행위'에 대해서 극심한 분노를 품고 있었다.
중학교때나 고등학교때나 나는 선생님들이 어떻게 그런 문제로부터 눈을 가리는지 알고 있었고
핸드폰이 생긴 뒤로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서 고발하거나 했었는데,
니가 하는 짓이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정말 바락바락 대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일 년에 한 번은 싸우게 됐었는데, 집에서 딱히 나를 탓하지는 않았다.
#3
당연히 지금은 화가 많이 사그라들었다.
'내 사정과 조건을 따져서 남을 돕거나 돕지 않는 행위'
오히려 남을 도울 때는 사정과 조건을 따지지 않으면 안 된다.
사내에서 폭언을 듣는 동료직원을 돕기 전에 내가 먹여살릴 가족을 떠올리는 게 당연하고,
괜한 분쟁에 휘말리지 않게, 범죄자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누가 시비가 걸리더라도 눈을 마주치지 말아야 하고
집단에서 지시받은 절차가 공정성에 어긋나거나, 공정성에 어긋나든 그렇지 않든 아래로부터 그걸 고칠 절차가 마련되어 있지 않더라도
그저 다수를 나보다 위에 두고 집단 자체가 상전인 양,
그렇게 사는 게 안전하고, 누구나 어느 정도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으니까.
엊그제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의 일에 분노하다가도 오늘 내 크리스마스가 더 소중한 그런 아침처럼,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던 시절도 나는 금새 잊어버리고, 내가 도와야 할 이웃도 돕지 않게 되어버렸다.
당연히 지금은 예전만큼 철없이 살 수는 없으니까.
그런 주제에,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에서
'왜 나는 당장 가진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내놓아 주지 못하고 회심하지 못하느냐'며
목놓아 우는 장면만은 인상깊게 보았다.
그 시절 누군가가 조건을 넘어서 나를 도와주길 바랐다면, 지금 내가 또한 그래야 하는 게 아닐까.
그게 아주 뭐 거대한, 해고를 당하고 당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라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도와야 할 문제가 아니라면.
친구의 문제라면.
#4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있을 즈음 친구가 자살했다.
몇 번쯤 시도한 거였고,
몇 번 도와준 후에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어떻게 맨날 도와줘?"
"도와준다고 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나?"
어쩌면, "그렇게 죽는다 죽는다 하는 사람들 안 죽는다"던가
"그 사람들 주위 사람 기빨아먹고 사는 사람들"이라던
그런 철없는 낙관론에 좀 기대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어머니의 문자로 부고를 전달받았을 때
나는 시험을 치겠답시고 중용 문구를 외우고 있었다.
그 후로 누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죽었으면 어떡하지?'하고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물론 버릇이라기보다 불안증이 심해진 것이다.
#5
엊그제 친구가 유서를 썼다고 했다.
사실, 걔가 유서를 쓰는 건 꽤 자주 있는 일이어서 그 자체로 나에게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심지어 그런 건 걔 하나도 아니었다.
요즈음 마음도 안정되어서 누가 죽으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증도 마음속 낙엽에 잘 덮여 있었고,
다들 그러듯이 시험준비한다고 휴대폰도 버리고 연락도 무시하면서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일기장이 떠올랐다.
기억과 감정들이 떠올랐다.
나는 그때 정말 절실하게, 누가 도와주기를 바랐었다.
조건을 따지며 절실한 사람을 내버리는 사람들이 싫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그 한 구절이 마음에 사무쳤었다.
왜, 자기가 왕따당할 걸 생각해서 나를 돕지 않는 애들이 그렇게 미웠으면서
왜 정작 나는 다시 그 사람들 속에 들어가 있을까?
왜 조건을 넘어서 다만 사랑하지 못할까?
너는 서른이 가까운 지금도 병신처럼 20년전 니 상처를 그렇게 핥는 주제에
당장 친구가 지금 지르는 비명에는 귀를 틀어막고 앉았단 말이냐?
#6
걔가 가지고 싶다고 했던 머그컵이 생각이 났다.
그래도 욕망이 있으면 자살은 안 하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보냈던 죽은 친구의 얼굴도 떠올랐다.
좀 더 생각하게 도와달라고 빌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더이상 부끄럽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하냐고.
나는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더 이상 쉬이 바라기도 힘든 친구에게 진심으로 복 많이 받으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지금 내 심경을 잊거나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써 두고 있다.
ps. 아 그렇지만, 솔직히 걔가 가지고 싶어하는 머그컵은 내가 보기엔 너무 바보같다. 그래서 더 우습다.
내버려 둘 수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