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5 - 술버릇 취향 조회수 42 2019-01-13 11:22:42 |
저번에 쓰다가 완성못한 술얘기를 마무리 지어야겠다. 아마 글에서 술냄새가 날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듯 나도 연말연시에 술자리가 잦았고, 과음을 많이 했다. 난 보통 정말정말 한계치를 넘지 않으면 목소리가 높아지고 말이 많아지는 것 혹은 혼자 골똘한 생각에 빠지는 것말곤 특별한 술버릇은 없다고 (나 혼자서) 생각했다. 하지만 연말연시에 그 한계치를 넘나드는 술자리가 많았다. 그래서 만취한 상태로 저지른 나의 술버릇을 반성해보려 한다. . 12월의 위스키모임.. 그날도 새벽3시넘어서까지 마신 나는 미리 서울역근처에 잠을 잘 친구집을 공수해놓았다. 하지만 택시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해보니 4시가까이 되었고, 왠지 한시간만 버티면 첫차를 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또 생겨나버렸다. 롯데리아에서 콜라를 하나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새벽 4시경 서울역 롯데리아는 음식점이라기 보다는 찜질방 수면실에 가깝다. 여기저기서 포장도 뜯지 않은 음식을 머리맡에 놓고 엎드려 자고 있었다. 열명정도가 된 사람들 중에 고개를 들고 깨어있는 사람은 없다. '나는 절대 저사람들처럼 자지 않고 한시간만 버티고 버스에서 자야지'생각을 하고 콜라를 빨며 페이스북 글을 읽고 있었다. 갑자기 누군가 나를 꺠우는 소리가 들려서 눈을 떠보니, 종업원이 나한테 여기서 자면안된다고 일어나라고 깨우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침 6시반이었고, 어제 나와 함께 자고 있던 동지들은 다 사라지고 아침을 먹으러온 하루를 바삐 사는 사람들뿐이었다. 대단한 사람들.. 어찌 다 그렇게 스스로 일어나서 잘 갔을까. 일어나서 경기도를 향하는 빨간버스를 탔다. 역시 요번에도 잠을 자지 말아야지. 하며 눈을 부릅뜨며 페이스북을 보고있었는데, 또 누군가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기사아저씨 목소리였다. 버스차고지였다. 역시나 또 자버렸다.. 차고지에서 30분가량 걸으면 집까지 갈 수는 있으나 도저히 그럴 수 있는 몸상태가 아니였다. 차고지는 택시가 잡히는 곳도 아니었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난 바로 옆에있는 빨간버스를 다시 타기로 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한 잠 때리고, 서울을 갔다가 원래 내리려고 한 정류장에 내려서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역시 바로 잠들었고 다시 기사아저씨의 소리가 들렸다. 아까 날 꺠웠던 아저씨였다. 아마 버스를 교대하려고 다시 타신것같았다. 아아 역시나 나의 계획은 또 실패했다. 또 차고지다. 아저씨께선 웃으면서 "학생한텐 버스비가 아니라 숙박비를 받아야겠는걸? 허허"하셨다.(학생이라고 불러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야 조금 정신을 차리고 옆 버스를 한번 더 타고 서울을 한바퀴 더 돌고 와도 마찬가지일 것 같았던 나는 체념하고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사실 차고지는 특이하게도 어떤 한 대학교에 위치해 있다. 캠퍼스를 관통해 후문으로 나가야 집으로 갈 수 있는데, 대부분 대학교가 그렇듯 어마어마한 언덕이 기다리고 있는데다, 하필 그날은 그 학교의 논술시험날이었다. 여기저기 건물에 논술시험을 알리는 플랜카드가 붙여져있었고 자식들을 시험장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학부모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내려오는 학부모들 사이를 헤치며 겨우겨우 힘들게 한걸음씩 올라갔다. 대학생시절 밤새 술먹고 동방에 잠시 잤다가 아침에 이제 수업들으러 올라오는 학생들을 헤치며 집으로 가던 때가 생각났다. 그 생각을 하던 중 집중력이 흐트러져 돌뿌리를 걸려 엎어졌고, 가방에서 진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위스키모임에 잘 왔다고 거기 대빵형님이 내가 피트가 강한 아일락위스키를 좋아한다 들었다며, 샘플러 7병을 주셔서 가방에 넣어놓았는데 그 중 한병이 와장창 깨진거다.. 바닥에 깨진 위스키샘플러병사이로 위스키가 흘러 흥건했다. 엎어져있는데 진한 피트향이 코를 찔렀다. 그 향이 너무 좋아서 잠깐은 엎어져있기로 했다. 선물해준 형님에게 죄송하단 생각과 함께 술이 너무 아까웠다. 문득 이 대학교에서 바닥에 위스키를 흩뿌린 사람은 내가 처음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스쳐지나갔다. . . 또 다른 연말의어느날, 친구동네에서 친구와 아는형과 같이 술을 마셨다. 그날도 많이 마셨는데, 이상하게 그들과 술을 마시면 내 옛날 어떤 트라우마가 떠오르며 약간 우울해지곤 한다. 술자리가 파하고 원래 잠을 자기로 한 친구집에 같이 가려고 걷고 있었는데 내 걸음이 느려서 친구와 간격이 점점 벌어졌다. 어느새 친구가 작아보일만큼 멀어졌다. 갑자기 이유모르게 서글퍼진 만취한 나는 방향을 틀어 원래 내 집을 향해 걸어가기로 한다. 집까지는 걸어서 두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인데, 역시나 술은 사람을 용감하게 만든다. 비틀비틀거리며 걸어가는데 또 갑자기 울컥해져왔고 내 인생이 너무 힘들다 느껴졌다. 그렇게 작은 목소리로 '너무 힘들다.. 꺼이꺼이 너무..' 읇조리며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마냥 광광 울며 코 질질짜며 비틀비틀 걸어갔다. 그리고 내 가장 좋지 않는 술버릇이 나왔는데 바로 새벽에 사람들한테 연락하는거다. 그것도 평소에 연락을 잘 안하던 사람들.. 보통 카톡을 하는데, 웃긴거는 카톡을 보냈다가 막상 그 사람들이 카톡을 답장하면 어쩔줄 몰라하며 밤중에 연락해서 미안하다며 연락을 끊어버린다. 자기가 먼저카톡해놓고.. 받는 사람은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ㅋㅋ 이전에 에이엡 수다방에서도 그랬던걸로 알고있고, 이 때도 에이앱의 어떤 분한테도 따로 갠톡을 보냈던거같다. 다시한번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추측컨데 아마 아무한테나 위로를 받고 싶은데 친한 놈들한테 그러기엔 쪽팔리고, 평소 연락을 못하던 사람들한테 연락을 돌리다가, 막상 연락을 받으면 '앗차 시발 내가 뭐하고있는거지' 하며 연락을 끊는것같다. 그렇게 핸드폰에 시선을 빼앗겨있다가 역시나 요번에도 돌에 걸려 엎어졌는데, 손에 핸드폰을 쥐고있어서 엎어질때 손을 못집고 그대로 얼굴로 엎어져버렸다. 전봇대같은 곳에 박은 거 같은데, 오른쪽 눈가 근처에 박았다. 안경은 부러졌고, 크게 박았는지 눈가에 피가 흘러내렸다. 피는 상관없는데, 안경은 산지 얼마 되지 않은 거라 매우 짜증이 났다. 이러니 마이너스통장을 벗어날수가 없지.. 그렇게 눈옆엔 피가 흐르고, 눈에선 눈물을 흘리며 집을 향해걸어갔다. 밤이 늦어서 거리에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나를 지나쳐 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좀비새낀줄 알았을거다. 그분들에게도 심심한 사과를.. 아무리 취했어도 그렇게 한번 엎어지니 정신이 조금은 차렸는지, 지금 내 상태로는 걸어서 집까지 당도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한 나는, 절반정도 온 거리에서 택시를 타고 집에 갔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세수도 안하고 자서 눈가에 핏자국은 그대로 있었고, 더 큰 문제는 눈을 제대로 박아서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듯 부어오르며 멍까지 들기 시작한거다. 그 후 멍이 사라지는 2~3주정동안 나는 회사사람들에게 내가 술먹고 누군가와 싸움질을 한 것이 아니라, 나 혼자 엎어진 것이라고 해명하느라 애를 먹었다. 물론 나의 해명은 누구도 믿지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