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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2. 03
Level 4   조회수 28
2019-02-03 11:59:13
#1.

친구 가족이 상이 나서 대전으로 왔다. 마침 동생 자취방이 가까이 있어서 하루 묵었다.

물론 동생은 부산 내 방에서 주무셨지만...(설날 귀향)

여러 생각이 들었다.

 

#2.

나는 삶에 몇몇 순간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매순간이 사실은 절대적인 경이로움으로 가득차 있지만,

삶의 선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점으로 특별히 인지되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게 크게 닥친 것은 친한 사람의 죽음이었고

군대에서의 절망이었고

멍든 하나의 거대한 점인 유년기의 우울이었다.

 

그 점들에 서서 나는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기를 바랐다.

물론, 외적으로는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고

내적으로는 스스로 일어설 수밖에 없는 일들이었다.

 

이후에 아무리 좋은 일들이 있었어도 그 점들은 여전히 내 안에 찍혀 있었다.

그것들은 평소에는 다른 감정들에 가려 보이지 않다가,

정말 힘든 순간이 닥쳤을 때, 삶의 긴 선으로부터 떨어져나와서는

이것이 네 삶의 절대적인 모습이라는 양 부정적인 기운을 뿌려댔다.

물론 그것은 거짓이다.

 

긴 인과로서의 삶의 선도, 잉크자국에 불과한 부정적인 점들도, 그걸 보고 있는 나조차,

하나로서 존재한다기보다 다른 것들의 조합, 조합된 것들도 다른 것들의 조합,

흩뜨리고 흩뜨리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그 자체로 의미가 없는 것들이라도

모여 있으니 지금의 생인데...

 

그렇게 생각하니 옛날에 매여 있는 나도 어리석고 가여웠고

주변을 돌아보니 다른 사람들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했더니 내 안의 충동성과 더해져서, 내 안에 약간 다른 질이 생겨났다.

다른 누군가가 겪은 특정 사건이 그 사람에게 하나의 까만 점이라고 생각되면,

실제로 그런지와 관계없이

가서 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혹은, 기억에 남는 밝은 점을 찍어주고 싶게 되었다.

 

이렇게 오버하지 말고,

내 아픔을 아픔이 아니라 내가 극복한 시련으로 남겨야 제대로 된 어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그런 것은 빈약한 목적론으로밖에 보이지 않아서...

삶을 목적론으로 해석해봐야 끔찍할 뿐이다. 모두의 결론은 죽음인데...

 

아무튼 그렇게 내게는 선 끝에 있는 것보다 선 중간중간의 밝은 점들이 더 중요했다.

혹은 점을 검정에서 회색으로 바꾸는 일이 더 중요했다.

해서 어제오늘 공부를 희생하고 상갓집에 왔다.

 

#3.

나도 안다.

나는 공시생이다.

합격하지 못했을 때 이 시기는 유년기보다는 흐리더라도

내게 있어서 큰 점이 될지도 모른다...

 

집에서 공부나 하는 게 맞지만, 이상하게도 통제가 안 된단 말이지.

앞으로는 약 먹고 생각하는 것들은 기록해뒀다가 약기운 떨어졌을 때 한번 더 고려해봐야겠다.

 

#4.

그래도 상주로 서 있는 애한테 밥이라도 사 먹이니까 내가 좀 나았다.

걔가 나은지는 모르겠는데 내 마음은 좀 나았다.

결국은 자기만족이지만...

 

 

P.S. 속에 뭐 들어가면 토하는 놈이 자꾸 술을 마시길래, 그만 마시라고 했더니

미친자처럼 시를 보내왔다...

 



 

어휴 참 여전하다 싶어서 조금 더 안심. 딱히 더 미치지는 않았군

 

P.S. 나한테 100만원만 있었어도 동생 방에 제습기와 공기청정기와 좋은 에어컨을 사 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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