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만에 넷플릭스를 보았다. 형설지공 조회수 28 2019-05-06 13:33:47 |
어제 홧김에 넷플릭스 정기권을 구매했다! 드라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ㅠㅠㅠㅠ 결국 시즌 4 정주행 했다. 나는 '블랙 미러'라는 영국 드라마를 좋아한다. 고등학교 때 친구의 추천으로 보게 된 드라마인데, 결말이 암울하고 해피 엔딩에도 씁쓸함을 남겨주는게 특징이다. 미래 과학 기술을 다룬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우니 강력 추천한다!
어제 내가 봤던 에피소드 중 하나는 자신이 몰래 구축한 가상 현실에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들을 가상에 집어넣고 화풀이하는 내용이었다. ‘스타 트렉’ 광팬인 가상 현실 구축자는 엄청난 컴퓨터적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자신의 동업자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성격이 소심해 사람들에게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거절을 못 하는 성격이 군데군데 드러난다. 그의 비뚤어진 분노 표출이 일으킨 참사가 주된 내용이지만, 그 구축자의 모습에서 내 모습이 보였다. 소심한 성격에 감정 표현이 서툴고 부끄러움에 숨어드는 모습이 나와 흡사했다. ‘좀 더 용기를 내서 사람들과 소통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저 사람 정말 소름 돋아! 내가 저러면 어쩌지?’ 등 각종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유치찬란하고 밋밋한, 그리고 자기중심적인 가상 현실로 도피하기보다는 잔인하고 험한 현실 세계에서 나를 지키고 맞서는 것이 올바른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또 다른 에피소드는 사람들이 더는 자발적으로 데이트 상대를 구하지 않고 애플리케이션이 지정해주는 상대로 데이트를 반복하는 세계를 그리고 있다. 커피숍 알람 벨처럼 생긴 소형 장치에 나타나는 상대와 만나고 서로 ‘유효 기간’이라는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시간이 끝나면 서로는 헤어지고 다른 상대를 구해준다. 이 애플리케이션의 매칭 성공 확률은 무려 99.8%로, 이 장치를 사용하는 모두는 이 앱이 시키는 대로 행동해야 하며, 거역할 시 외부로 추방된다(‘벽 바깥’이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처음 등장하는 남녀는 첫 데이트여서 어색하기도 하지만 서로에게 끌린다. 시간을 확인하니 12시간만 주어졌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헤어진다. 남성은 한 깐깐한 여성과 1년 동안의 교제를 하고, 여성은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남자와 교제를 한다. 물론 짝은 앱이 결정해준다.
남자는 지루하고 불편함을 느끼고, 여자는 잦은 파트너 교체에 공허함을 느낀다. 앱에 음성 인식 기능이 탑재되어 있어 질문할 수 있는데,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의심하지 말라. 믿어라. 그러면 최고의 짝을 골라줄 것이다.” 등 원론적인 이야기만 되풀이한다. 운 좋게 남녀는 다시 커플로 이어지는데 만나는 자리에서 ‘유효 기간’을 확인하지 않기로 약속한다. 그렇게 둘은 깊게 사랑한다. 남자는 ‘유효 기간’이 다 해서 자신의 행복이 끝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고 여자 몰래 ‘유효 기간’을 확인한다. 화면에 ‘5년’이라 뜬다. 하지만 앱에서 경고음을 내며 기간은 계속해서 줄어가고, 결국 20시간까지 줄어든다(혼자서 ‘유효 기간’을 확인할 경우, 관계가 불안정해지므로 기간을 재조정한다고 한다.). 약속을 깬 것을 안 여자는 실망감에 헤어지고 서로 다른 파트너들을 만나지만 만족감 없이 시간만 흘러간다.
최종의 짝이 지어지는 날을 ‘페어링 데이’라고 부르는데, 페어링 데이 전날 최종의 짝을 만나기 전에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 감정을 정리할 시간을 준다. 여자는 그 남자를 지목하고 첫 만남이 있었던 식당에서 만난다. 그리고 둘은 벽을 넘기로 결심한다. 그들을 감시하는 사람들이 전기 충격기로 위험하지만, 여자는 전기 충격기에 손을 가져다 댄다. 놀랍게도 남녀 둘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행동하지 않고 둘은 그 틈을 타 벽을 넘는다. 벽을 거의 다 넘자 모든 것이 갑자기 픽셀 단위로 분해되고 머리 위에 998이라는 숫자가 머리 위에 뜬다. 그리고 ‘1,000건의 시뮬레이션 완료. 반항 998건 기록. 99.8% 일치.’라는 글자가 뜨고 화면은 전환된다. 화면이 스마트폰 화면으로 전환되고 스마트폰에 99.8% 일치라는 문구가 뜬다. 스마트폰의 주인은 두 남녀. 서로를 바라보며 웃으며 다가간다.
해피 엔딩이지만 씁쓸하다. 결국 시스템을 무너뜨리기 위해 감행했던 탈출도 여러 시뮬레이션 중 하나였다니 씁쓸하다. 스마트폰 화면으로 전환된 장면도 데이터 앱(일례로 ‘틴더’)으로 연인을 만나려고 하고 자발적으로 대면하여 만남을 추구하지 않는 현대인을 비판하기 위한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그다음에 시청(?)했던 것은 특별화 ‘밴더스내치’였는데, 소설로만 접해봤던 ‘하이퍼텍스트 문학’을 실제의 영상으로 ‘플레이’해봤다. 내가 어떤 선택지를 고르는가에 따라 결말은 달라진다. 기괴하고 우울함에 극치를 달리는 게임(?)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다양한 엔딩을 보려고 오랜 시간 플레이했던 것 같다. 너무 몰입하면 정말 주인공처럼 미쳐가는 것 같아 엔딩 3개만 보고 접었다. 누가 나를 조종한다는 생각, LSD 흡입 후 느끼는 환각 등 보면 볼수록 무서웠다. 과연 그는 위대한 작품을 남기기 위해 광기가 필요했었나? 이것을 보면서(?)플레이하면서(?) 무엇이 진실이고 허구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이게 아마 제작자의 의도 중 하나인 것 같지만, 어떤 주제를 그려내고 싶었는지 알 수 없었다. 섬뜩하고 불쾌했다.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힌 나를 달래기 위해 마음 잔잔한 로맨스 영화를 마무리로 자려고 했다. 이번에 대만에서 새로 나온 ‘장난스런 키스’라는 진부한 로맨스 영화를 봤다. 그런데 나름 사랑하는 남녀가 보기 좋더라. 잘 시간이 되어서 일찍 자리에 누웠다. 후회는 없었던 하루였다. 연휴가 이래서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오늘도 몇 개 더 봐야겠다. 연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