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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열심히 노력해야지만 무언가를 바랄 수 있는 거야?"
Level 3   조회수 44
2019-06-18 09:28:10
"꼭 열심히 노력해야지만 무언가를 바랄 수 있는 거야?"

비가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하늘이 희뿌옜으나 끝내 비는 내리지 않은 날이었다. 뽀록을 바라며 참가한 시험에 떨어졌을 때 그녀는 말했다. "어차피 노력도 안 했던 시험이라 떨어질 걸 예상했어"라는 말의 대답이었다. 우습게도, 한 달도 채 안 만났던 터라 지금은 그녀의 얼굴조차 기억이 안 나는데, 저 말만큼은 생생히 떠오른다.

당시 내가 열심히 한 건 방황밖에 없었다. 성실하게 실패하여 규칙적으로 좌절했다. 편의점 알바생한테 당당히 내밀 수 있는 신분증을 얻었지만, 눈치 보며 담배 피우던 때와 달라진 건 크게 없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주위 사람 모두, 재수생이든 대학생이든 여전히 공부에 얽매여있었다. 그중 유일하게 교재 안 펼치는 내가 또라이 취급받는 것도 마찬가지였고.

노력만으로 불가능한 게 있다는 걸 느끼면서도 "노력하면 될 거야"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었다. 열심히 하면 안 될 것 없다, 틀린 말은 아니지. 도박도, 이론적으로는 잃은 돈의 두 배 이상을 계속 걸면 언젠가는 이득을 볼 수 있는 구조이다. 물론 전제 조건은, 판돈이든 노력이든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서일까, 속도가 남들과 다른 건 동정받지만 방향이 남들과 다른 건 죄악시된다. 담배 뚫는 민증에 내재된 '자유와 책임' 같은 거창한 말이, 도수 높은 외국 술과 명분 얻은 섹스나 즐기다가 적당한 고생과 함께 취업하여 여생을 타인에게 "나 젊었을 때는 말이야" 따위의 곰팡내 나는 멘트나 던지며 사는 것 따위를 뜻하는 건 아닐 텐데, 최소한 나는 아니라고 믿고 살았는데, 아닐 건 없었다. 날 버릴 수 없어 꿈을 버렸을 때 다들 얘기했다. "이제야 정신 차렸구나!"

나에게 있어 노력은 뻘짓, 방황,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하는 짓거리와 동의어였다. 그래서, 누구 말마따나 노력으로 안 되는 게 운명이라면, 이건 운명이었다. 뒤지기 직전까지 방황해봤자 벗어날 수 없는 운명.

"꼭 열심히 노력해야지만 무언가를 바랄 수 있는 거야?"

그러게. 노력만으로 안 되는 게 있다면, 노력 안 해도 되는 것 또한 있어야지. 그래야 안 억울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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