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까지 앞을 가리는 순간, 웃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그 사람, 여전히 웃음기를 띄고 이야기한다. "그쪽도 혀를 깨무는 병이 있으신가봐요. 그래서 마음 풀러오셨구나. 달리는 게 최고죠. 역시~ 저희 같은 병이 있는 사람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많이 없죠? 괜찮아요. 저는 당신이 피를 흘려도, 눈물을 흘려도 괜찮아요." 그리고 무언가를 건넨다. 받아보니 무엇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약도 아니고 음식도 아닌...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묻는다. "이게 뭐죠?" | |
"안녕하세요, 네 처음이에요. 오늘은 아무 생각없이 실컷 달리고 싶어서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까 깨문 혀가 너무 아파서 제대로 발음할 수가 없었다. 내 의도와는 달리 내 입에서는 알아듣기 힘든 말들이 나와서 수치스러웠고, 비릿한 피맛과 함께 조금전 이상형이었던 알바생에게 거절당한것이 떠올라서 나도모르게 처음보는 그 사람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 |
"안녕하세요 새로 오셨나봐요?" 웃으며 말했다 | |
수십명의 런닝크루가 달리기를 하기 위해 몸을 풀고 있었다. 오늘 하루 부정적인 감정을 아무생각 없이 달리며 다 털어내버리고 집에 들어가 개운하게 씻고 잠들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사실 달릴때도 끊임없이 생각이 든다. 아무튼 나는 수십여명의 맨 뒷줄에 슬쩍 서 같이 몸을 풀었다. | |
![]() "아, 그렇다면 이번주에 시간 괜찮은 때 있으신가요?" / "아뇨, 이번주 내내 바쁠 것 같아요." / "아...그러면 혹시 번호라도..." / "죄송해요 저 디지털 디톡스 중이라 핸드폰 안 써요." / "보니까 맨날 핸드폰 붙잡고 계시는것 같던데..." / "이제부터 줄여보려고요." / 그녀는 여전히 친절했지만 보이지 않는 무겁고 굳센 벽에 가로막힌 기분이 들었다. 더 뻘쭘해질 것 같아 인사를 하고 편의점을 나섰다. 결국 혼술을 하게 되었군. 아까 깨물었던 혀가 조금씩 부풀어오르는게 느껴진다. 까짓거 알콜로 소독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길을 걷던 나는 공원 앞에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거기엔.. | |
![]() "괜찮습니다 볼 일이 있어서요;;" | |
알바생의 커다랗고 동그란 눈이 나를 걱정하고 있다.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앞선다.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말을 멈출 수가 없다. 알바생은 잠깐 기다리라며 손짓하곤 곧 내 앞으로 휴지를 가져와 내민다. "술은 못사드려도 이건 사드릴 수 있어요. 얼른 닦으세요. 아프시잖아요. 마음같아선 제가 닦아드리고 싶지만 제가 피를 만지는 것을 무서워해서... 죄송해요." 세게도 씹었네. 무서울 정도로 많이 나긴 한다. "괜찮아요. 저는 원래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올 것 같다라는 말 많이 들어요. 그런데 그쪽 덕분에 제게도 심장이 있다라는게 실감이 나네요. 오랜만에 살아있는 것 같습니다. 술은 제가 사드릴게요. 오늘 영 혼술할 기분이 아니네. 알바가 30분 안에 끝나시면 저랑 회에 소주 한 잔 하실래요? 아, 회는 좋아하세요?" | |
![]() 짤랑짤랑 "어서오세요~" '응?..알바 목소리가 달라졌네..?' 고개를 돌려 카운터를 바라봤더니 여대생처럼 보이는 알바생이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어..어?..안녕하세요.." 수줍게 인사하고 알바생의 시선을 피해 빠른 걸음으로 호다닥 진열대 너머로 들어갔다. 콩닥콩닥..'뭐..뭐야..완전 내 이상형이잖아..후욱후욱..진정해 가슴아...' 나는 요동치는 가슴을 쉼 호흡으로 고르며 일단 냉장고에서 소주 두병을 꺼냈다. 안주는..회 포장센터에 이미 주문 해놨다. 30분 후에 찾으러가면 된다.'딱히 살건 없으니 그냥 갈까?..' 쭈뼛쭈뼛 계산대로 발걸음이 향했다. 알바생이 점점 가까워 지자 '아 맞다..오늘 면도 안했는데..콧털정리도 안했는데..마스크도 없는데..하...' 부끄러움이 샘솟는동안 이미 계산대에 도착했다."상품 계산대에 올려주시겠어요?" 소주를 올리고 알바생을 본 순간. '쿵!--미쳤다리 너무 예쁘다..뇌가 오작동을 일으키기 전에 얼른 계산하고 나가야겠어..' 띡-띡 "4천원 입니다" 나는 지갑을 꺼내기 위해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 왼쪽 오른쪽 뒷주머니 다 넣어봐도 내 손은 허공을 휘저을 뿐이었다. 그걸 보던 알바생이 "저기.. 혹시 돈 깜빡하고 안 들고 오셨어요?"......'크흡ㅠ쪽팔리네ㅠㅠ' 그래..그냥 다른데서 사야겠다."네..그런것 같네요ㅎㅎ..그..지갑 가지러 갔다 올게요" 나는 잽싸게 소주를 원위치 시켜 놓으려고 집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저기.. 사실 오빠.. 제 스타일인데 혹시 이 근처 사세요?"..'ㅁ..뭐?..나닛?이게 머선 129?나한테 일헌일이?..'나는 순간 눈이 똥그랗게 변해 알바생을 5초간.. 응시했다. 그 애는 베시시 수줍게 홍조를 띠며 미소짓고 있었다. 아..너무 사랑스럽다 가슴이 터질것 같다.."사..사ㅏ..사실..ㄹ저/./.저도!!!!! 그..그쪼.그쪽이 너무 제 스타일여ㅅ!!!!앍" 말하다가 혀를 씹었다. | |
"자네,절에 다니는가?" 어휴 도를 아십니까 할아버지구만...눈살을 찌푸리고 빨리 걸었다. 요새 왜 이렇게 길에서 자주 도인들에게 잡히는가. 내 얼굴이 누가 봐도 호구상인가. 또 답답한 마음이 불쑥 올라온다. 술 한잔을 하고 싶어서 전화기를 꺼내 목록을 살펴봐도 누구 하나 맘 편하게 전화할 사람도 없다. 나만 그런건 아니겠지. 알고는 있는데 씁쓸한 마음에 입술을 깨문다. 전방에 편의점이 보인다. 혼술이라도 할까.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가본다. | |
오늘 그렇게 난 면접을 망치고 집으로 터덜터덜 가는 길에 어떤 할아버지를 만났다 | |
그렇게 면접보는 회사의 건물을 올려다 보았다. 회색빛이 나는 매끈한 건물외벽에 곳곳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거울처럼 비친다. 건물은 높고, 웅장했다. 이번엔 건물을 쳐다보니 내가 보였다. 쳇바퀴처럼 잘 굴러가는 질서정연한 세상에 끼지 못하는 내 인생이, 꼭 오늘 잘못 신어버린 신발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요즘은 언발란스한 스타일이 유행이니까 괜찮겠지 하면 위안 삼았지만 누가봐도 잘못 신고온게 티나는 다른 색감과 다른 디자인.. 이런일이 한두번 있는 것도 아니지만서도 이제는 이런 삶이 지친다. 일단 택시를 타고 면접장소로 향한다 근처 신발 가게라도 들려야 되나 고민을 하는 와중 면접장에 도착을 했다 다행히 시간은 면접 5분전 그냥 마음을 비우고 면접에 임하기로 한다 | |
콜을 부른 택시가 늦는다. 초조한 마음에 손톱을 깨물어 보지만, 이미 갈을데로 갈려 짧아진 손톱은 더이상 깨물기도 어렵다. 아쉽지만 손톱 옆의 굳은 살을 깨물어 본다. 약간의 시워한 느낌이 짧게 올라왔다 사라진다. 드디어 근처에 왔다. 안늦게 갈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급하게 나오느라 구두를 짝짝이 로 신고 나온 걸 발견했다 | |
아 이런... 이불을 걷어차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간다 빨리 머리를 감고 대충 말리고 카카오 택시를 잡으면 늦진 않을거야 | |
"눈을떠..." 감미로운 목소리가 계속 반복되었다. 목을 들어보려 노력했지만 목은 사시나무처럼 떨리기만 할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감미롭던 목소리는 점점 낮아지며 귓가로 다가왔다. "눈을떠.... 눈떠.... 눈뜨라고 이놈이끼야 해가 중천이다 이시끼야" 그렇다.. 우리엄마였다.. 면접보러가야되는데 좀처럼 일어나지 않던 나를 깨우기위해 참다못해 오셔서 빗자루로 궁둥짝을 때리며 깨웠다. "몇시여" 시간을보니 면접 1시간 반 전. | |
“눈을 떠”. 따뜻한 입김과 함께 내 귀로 들어오는 나즈막한 그 소리가 감미로워 고개를 그 쪽으로 돌리고 싶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움직일 수 없는건 눈과 머리뿐만이 아니었다. 온몸이 포박되어 꼼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가위에 눌렸구나, 내가 아직 꿈을 꾸고 있구나라고 직감했다. 그렇지만 무섭진 않았다. 내 곁에 있음이 느껴지는 어떤 존재의 목소리가 너무 감미로웠기 때문이었다. 이런 목소리를 가진 존재라면 나를 해하려고 왔겠는가 싶을 정도로. 목소리를 들어보니 젊은 여자임은 분명했다. 눈을 뜨라고 말했지만, 온몸을 움직일 수 없는 이 꿈에서 깨어나고 싶은 마음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오히려 내 눈이 떠지면 이 꿈에서 깨어나, 이 여인의 모습을 영영 보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이 들었다. 깨어나지 않는게 보장만 된다면 눈을 뜨고 고개를 어떻게든 돌려 여인의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궁금했다. 나에게 이렇게 감미롭게 속삭여주는 사람이 누군지. | |
눈이 떠지질 않았다 다시 한번 눈꺼풀을 들어올리기위해 힘을 줬다 여전히 눈이 떠지지 않는것이 었다 그러자 갑자기 내 귀에서 나즈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 |
"꼬라지 보니 이거, 개꿈이군." 나는 눈을 뜨고자 했다. 알을 꺠고 나오려는 새처럼. 난각을 달고 딱딱한 그 껍질을 부수듯 나는 눈꺼풀을 난타했다. 하지만- | |
그러나 도로로는 곧 거대한 형태의 나무로 변했고, 나는 그 장면을 멍하니 압도되어 바라볼 뿐이었다.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도망쳐!!!!" 그 소리에 정신이 돌아온 내가 전력으로 뛰려는 순간, 나무의 가지들이 공포스러운 칼날로 변하고 있었다. 나는 다음과 같은 혼잣말을 내뱉었다. | |
좁은 골목길을 치열하게 달렸다. 뒤에서부터 들려오는 일행들의 발자국 소리는 나의 심장을 쥐어짜는 공포를 느끼게 했다. 뒤쪽에서 던지는 작은 벽돌들이 내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다. 이후 내 귓가에 쨍하는 큰 소리가 들렸고 일행이 쫒아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뒤를 돌아보니 무리들은 전부 쓰러져 있었고 내앞으로 하늘에서 누군가가 착지한다. "구해주러 왔다네". 그는 캐로로소대 도로로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