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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뭐 약 잘못 먹었냐?”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은 뒤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이야기는, 천주교나 개신교 신자가 아니라도 많이들 알고 있는 굉장히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절대 선악과만은 먹지 말라는 하느님의 뜻을, “선악과를 먹으면 지혜를 얻어 하느님처럼 될 수 있어”라고 말한 뱀의 꾐에 넘어간 이브가 먼저 거역하였고, 곧이어 남편 아담에게도 선악과를 권해 둘이 사이좋게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다는 이야기. 우리가 이 이야기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담과 이브는 ADHD(이하 @)가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그들이 @였다면, 아무 생각 없이 깜빡하고 선악과를 따먹었을 것이니까. 어쩌면 하느님이 한 번 봐주셨을지도 모른다. “아 ㅁㅊ 맞다 님들 ADHD지;; 실수 ㅇㅈ 한 번 봐드림 담부터 절대 선악과 근처에 얼씬도 ㄴㄴ ㅇㅋ?”라고 하며.

@가 할 수 있는 실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나는 간혹 친구들에게 실수담을 얘기하곤 하는데, 대다수는 내가 그 실수들을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 웃기려고 지어낸’ 것이라고 여긴다. 근데 대부분의 상황에서 난 오히려 사실을 축소하여 얘기하는 편이다. 모두 다 얘기하기엔 너무 쪽팔려서. 샤워하다가 샴푸질을 까먹은 이야기, 샤워하다가 샴푸질을 했단 사실을 까먹어서 샴푸질을 두 번 이상 한 이야기, 샴푸 다 떨어져서 마트 가기 전에 씻고 가려고 샤워하다가 샴푸가 없다는 걸 상기한 이야기… 이 모든 건 나의 경험담인데 대다수는 안 믿는다. 하긴, 나라도 내가 아닌 사람이 이런 걸 얘기하면 안 믿을 것 같긴 하다.

어제는 약을 잘못 먹었다. 자기 전 아빌리파이와 트리티코를 먹었어야 하는데 깜빡하고 전에 받았던 탄산리튬과 클로나제팜을 먹었다. 옛날에는 아침에 먹어야 할 콘서타를 자기 전에 먹어서 생활리듬을 스스로 망친 적도 간혹 있었다. 최근 몇 달 동안은 수면장애로 인해 불규칙적으로 졸피뎀을 먹었는데, 졸피뎀 먹은 사실을 깜빡하고 졸피뎀을 또 먹었다가 정말 큰일 날 뻔하기도 했다. 샴푸질 안 한 건 약간의 찜찜함으로 끝나기에 (조금 더럽긴 하지만) 큰 문제가 되진 않는데, 약을 잘못 먹으면 최소 하루, 길게는 한 주를 날려먹게 되기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종종 이러한 의도치 않은 약물 남용을 해버린다. 가끔 이럴 때 친구들이 맛탱이 가버린 내 상태를 보곤 “너 무슨 약 잘못 먹었냐?”라고 묻는데, 이게 진짜라서 할 말이 없어진다.

약을 잘못 먹어서인지 잠을 네 시간밖에 못 잤다. 아마 오늘은 종일 좀비 모드이겠지. 내용은 많이 다르지만 제목이 오늘의 내 컨디션을 정확히 수식하는 노래 하나 첨부하고 글을 마무리짓겠다.

 

Ps. 가사에 욕 섞인 한국 힙합 곡이니 취향 아닌 사람들은 그냥 패스하면 된다.

뉴챔프 – 추리닝 좀비 모드(Feat. 죄와 벌, 슬리피, 루다, 우디고차일드, 노엘)

““너 뭐 약 잘못 먹었냐?””의 4개의 댓글

  1. 저도.. 지금도그렇지만… 샴푸로 샤워도하공… 바디워시로머리도 깜고,.. 그.. 어..갑자기 단어생각이,,,,?!!!!! 아! 클렌징폼으로 양치도하고ㅠㅜ 우리들에겐 무슨 이야기든 해도 좋아요!! 우린 우리가 잘알고있으니!!(ADHD관련!) 약은..저같은 경우도 고민이 많았어요.. 내가 약을먹었나?안먹었나?… 깜빡깜빡하고… 뭔가 먹고나서 표식을 해두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

  2. 1. 역시 가독성이 좋은 쿼츠님 글!
    2. 졸피뎀의 의도치 않은 오남용은 정말 위험하겠네요… ㄷㄷ
    3. 저도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기억이 안날 때가 있었던… 그럴 때 그냥 안 먹었던거 같아요. (또 먹으면 큰일날까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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